‘렐리지오소(Religioso)’. 독일의 첼리스트이며 작곡가, 지휘자였던 골터만(Goltermann, 1824-1889)의 작품이다. 스페인어로 ‘종교적인’이라는 의미와 함께, ‘엄숙한’ ‘경건한’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단다.
“눈 덮인 겨울 호숫가에 오두막집이 있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눈이 내리는 날, 그 오두막집에서 호숫가를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 때 어떤 마음이 들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지금 이 부분을 연주해 주세요.”
첼로 오케스트라 합주 연습 시간에 지휘자님은 특히 렐리지오소 후반부의 연주를 그렇게 차분하면서도 경건하게 연주해 달라고 주문하였다. 어떻게 지휘자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느낌을 갖게 되었을까? 잊지 않으려고 악보에 진하게 적었다. ‘눈 덮인 겨울 호숫가 오두막집’
요즘들어 합주 연습을 하면서 ‘연주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게 된다. 연주란 작곡가가 곡에 담고자 했던 생각과 느낌을 연주자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표현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연주자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같은 곡이라 하더라도 그 느낌이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그래서 연주를 잘 하려면, 두 가지에 모두 능숙해야 할 것 같다. 잘 해석할 것, 잘 표현할 것.
내가 첼로라는 악기를 처음 만져 본 것은 예순이 되어서다. 은여울에서 현악반을 만든다기에 아이들에게 뭐라도 보여 주고 싶은 심정에서 나도 아이들과 함께 첼로를 배우겠다고 자원했다. 당시 내 속내는 아이들에게 서툰 내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줘 교장 선생님도 저렇게 못하는데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이들이 배움을 포기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시작해 4개월 동안 아이들과 함께 방과후 과정에서 첼로를 배우다가 교육청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배움도 멈추었다.
그러다 다시 시작한 것은 충북예술고로 자리를 옮기면서다. 예술고에서 만난 모든 아이들이 다 예술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던 아이들이었기에 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잊혀졌던 내 오랜 소망, 작곡가가 되고 싶어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이제는 나를 위해서 악기를 배워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교직원 오케스트라에 입단해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지난 주 월요일에는 교직원 오케스트라 17회 정기연주회가 있었다. 내겐 세 번째의 정기연주회다. 여전히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모든 곡이 아직 버거운 게 사실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단원들이 모여 합주하는 과정만큼은 여간 재미난 게 아니다. 그래서 합주 연습에 빠질 수가 없다. 그나마 올해는 셈여림에 조금 더 신경을 쓰면서 연주하려고 애썼던 것을 보면 이제는 표현에도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한 것 같아 내심 기쁘다.
엊그제 토요일에는 동부창고에서 벨코첼리 오케스트라 창단연주회도 있었다. 여러 악기들로 구성된 교직원 오케스트라와는 달리 순수하게 첼로로만 구성된 이 오케스트라는 또 다른 맛과 재미를 안겨준다. 지난 여름 이 오케스트라를 우연히 알게 되어 매주 연습에 합류할 수 있게 된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렐리지오소’의 연주 순서가 되자 지휘자 선생님이 합주 연습 때 강조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나는 지금 눈 덮인 겨울 호숫가 작은 오두막집에서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간간히 휘파람 새소리가 들리고 가지에 쌓였던 눈들이 미풍에 날리며 햇살에 반짝일 뿐, 주위는 온통 고요하다. 호수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파란 하늘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렇게 상상하면서 ‘렐리지오소’를 연주했다.
이렇게 연주하는 과정들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어느 날인가는 나만의 ‘렐리지오소’를 연주하는 날이 오겠지? 그 날 나의 ‘렐리지오소’는 어떤 장면, 어떤 해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