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상징물
역사의 상징물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4.12.03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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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주민들의 편의를 위한 공간인 줄 알았다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지나간 역사를 돌아보게 만드는 순간에 이른 것이다. 이 도시에 그리도 오래 살았건만 공원의 둥글고 커다란 탑에 관한 관심을 왜 품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이곳이 혹시 공장 터였나 싶은 정도로 지나다니고는 했었다.

탑 주변을 살펴보니 안내표지가 있다. 생소한 이름 급수탑이다. 증기기관차 시절 기차가 정차해서 급수를 받던 자리였다니 감회가 깊다. 내가 충주로 시집을 올 때만 해도 기차역은 이 주변이었으며 작고 아담한 동네였다. 1980년 충북선이 복선화로 되면서 역은 옮겨졌고 우연하게도 지금껏 새롭게 세워진 역사(驛舍) 부근에서 살아가는 중이다.

탑은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졌다. 백년의 역사를 말하고 있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1928년이면 일제 강점기가 아닌가. 석탄을 태워서 끓여내는 물의 증기로 기차가 움직이던 때이니 오늘날과는 비교하기조차 힘든 풍경이다. 급수탑에 물을 저장했다가 낙차를 이용해서 기차의 부족한 물을 보충했다는 설명이 다시금 아득한 시대로 거슬러 오르게 한다. 그제야 철도 발달의 역사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탑의 원형은 백년을 지켜왔음에도 튼튼해 보인다. 심지어 바깥 부분에는 물을 내리던 원통의 철제 파이프 이음까지 아직도 매달려 있다. 물을 펌프로 급수탑 상부로 끌어 올렸다는데 전기를 사용했을지는 의문스럽다. 만약 전기가 없었다면 아마 사람의 손으로 펌프를 움직였을지도 모른다. 윗부분에 매달린 철제사다리는 바스러져 가는 상태이다. 나도 모르게 탑 주변을 서성이며 알 수 없는 회한과 마주한다.

급수탑은 증기기관차가 디젤 화 되면서 1968년 사용이 멈추었다고 한다. 약 40년 동안 급수탑은 기차의 움직임을 위해 조력해 오던 구조물이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근대 교통의 역사를 눈으로 보게 되다니 기분이 묘해지고 있다. 그리고 시대적 상황마저 자꾸 떠올라 안타까움이 스며든다. 일본이 건설한 교통의 수단이지만 그 속에는 얼마나 많은 수탈과 압제가 있었겠는가. 급수탑을 보며 지울 수 없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현재를 깨우고 있다. 다행히도 2022년 시도 문화재로 등록되었다는 사실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안긴다.

국토의 핏줄과 같은 교통은 우리를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다. 삶의 질도 높일뿐더러 소통도 빠르게 해 주었다. KTX라는 열차를 충주에서도 이용하게 되었기에 그렇다. 하지만 우리의 아픈 역사, 남아있는 어떤 흔적도 지녀야만 한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더욱 튼튼한 나라를 만들어가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고 여긴다. 백년을 지켜온 그 자리에서 급수탑이 무거운 그림자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하고 있는 듯하다. 한 시절 동안 탑에서 기차로 떨어지는 물소리마저 귓전에 들려오는 것만 같다.

급수탑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물을 퍼 올리던 우물의 흔적은 사라져 갔고 탑 위의 하늘은 한결 푸르다. 작은 공원으로 꾸며서 역사의 상징물을 보존하고 있는 상황이 다행이지 싶다. 왜 문화재로 지켜가야 하는지 충분한 이해를 하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한다. 길가에는 KTX 열차가 내륙인 문경으로 이어진다는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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