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66>…심마니 이야기 6
단상(斷想) <66>…심마니 이야기 6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3.12.12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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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시인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월악산 자락에 감싸인 작은 면소재지가 있습니다. 동네는 작고 한적해서 방앗간도 하나, 짜장면집도 하나, 구멍 가게도 하나씩만 있는 그런 작은 동네입니다. 흉악한 사고가 날 일도 없으니 작은 파출소는 노상 한가하고 가끔 술 먹고 경운기 운전을 하며 돌아다니는 촌로(村老)들이 있기는 하나 한 다리 건너서 다 아는 형, 동생, 아제로 통하여 붙잡아 음주 측정기를 들이댈 수도 없습니다.

‘술 작작 드시고 운전하셔유~’라고 보내도 탈 날 것이 없고 탈이 난다고 해도 기껏 술 취한 경운기가 논두렁에 처박혀 덜덜거리고 있을 뿐이요, 술 깨다만 아저씨는 비틀거리고 일어나 빨간약 찍어 바르고 파출소 의자에 앉아 또 술 마시고 있으면 옆집 아줌마가 헌털뱅이 트럭 몰고 와서 실어가는 그런 작은 동네가 하나 있습니다.

그 동네에는 허름한 두부집도 딱 하나 있는데 이십 수년 전에 남편을 여읜 할머니 한 분이 산초를 따 모아 들깨 섞어 기름을 내려서 두부를 구워주는 집입니다. 할머니 기력은 떨어지고 자주 다니는 집이라 너남없이 제 손으로 반찬을 가져다 먹기도 하고 다섯이 가도 칼국수 셋만 달래서 갈라 먹어도 양푼 채 갖다주는 그런 할머니 한 분이 여태 살아 계십니다.

계산이 어두워 먹은 사람들이 메뉴판 보고 계산하여 돈을 내어줘도 맞다 그르다 한 번 하지 않는 어리숙한 척 하는 할머니 한 분이 꼬부랑거리며 소일로 장사하고 사십니다. 이번 겨울 초입에 들렀더니 할머니가 앓아 누웠습니다. 화색(和色)은 좋은데 입맛이 없고 세상 만사가 심드렁하답니다. 곰곰이 진맥을 봤더니 오랜 세월 홀로 살아 사람의 온기가 멀어져 우울과 조울이 같이 온 듯합니다.

‘할머니~ 다 죽게 생겼네요?’ 했더니 ‘사람이 그립어서 그랴~’ 하십니다. ‘그러길래 동네 아줌씨들 불러서 칼국수도 해 주고 두부도 구워주고 그러면서 사랑방 노릇하면 사람들이 버글버글 할텐데 왜 그리 못 하고 산데요?’ 했더니 ‘평생 안 그러고 살았는데 하루 아침에 고쳐지나~’ 하십니다. ‘할머니 죽으면 돈 가져 갈거유~? 다 자식들 좋은 일 시키고 마는거지, 쓰고 사셔요~’ 해도 여지껏 살아온 습관이 있으니 이제 서너 해 더 넘기면 잘 넘겼다 싶을 노구(老軀)가 쉽게 고쳐지지 않겠지요. 설령 고쳐진다 해도 옛 어른 말씀대로 ‘사람이 변하면 죽는겨’라는 말처럼 변하자마자 죽겠지요.

그냥 저러고 사는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사람이 번잡해야 따뜻하고 포근한 자리가 됩니다. 내 손에 돈 쥐고 있어야 힘이 된다고 하지만 이렇게 작은 시골 구석에서는 돈을 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를 쥐어야 할 것입니다.

손에 가득 모래를 쥐고 흐르는 물에 넣으면 시나브로 모래는 빠져나가 빈 손만 남게 됩니다. 놓아야 누리고 느낄 수 있습니다. 손에 쥐었다가 아낌없이 놓았을 때 흐르는 물의 따스함과 시원함, 아름다운 물살을 느낄 수 있겠지요.

같이 간 심마니가 그 할머니를 약초 가게로 모시고 와서 산삼 두어 뿌리를 곱게 씻어 건넵니다. ‘드시고 건강히 사셔요~’라고 하자 그제야 ‘약은 공으로 먹으면 안되는디~’하면서 꼬깃한 만원짜리 한 장을 건넵니다. 산삼을 건네는 손은 푸짐했으나 건네 받는 손은 초라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습니다. 나누고 나눠야 풍요로워지는 삶. 그것이 삶의 이치일 것입니다. 베풀어 넓어지는 삶을 또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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