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게 참 철없던
간절하게 참 철없던
  • 배경은 독서강사
  • 승인 2024.06.3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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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독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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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머리카락과 시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시간은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무형의 것이지만 내 몸에 새겨지는 가장 극렬하게 반응하는 가시적인 결과물로 저와 함께 합니다. 숱이 많다고 인사말로 곁들여 들었던 시간은 지나고 이제는 탈모를 걱정하며 검은콩이 좋은가 어떤 샴푸를 써야하나 서치 하는데도 반나절이 흐르곤 합니다.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이듯이 최대한 마음걱정을 하지 않기 위해 오늘도 버둥거리는 자신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는 것은 아직은 여러 면에서 여유를 갖고 싶은 것이겠지요.

마침 제가 머리카락 관련한 작품을 우연히 선물 받았어요. 지우 작가가 쓰고 그린 『나는 한때』인데요. 아니 요즘 그림책들은 어쩜 이리도 다양하고 정교하게 나오는 걸까요? 어떤 철학서보다 세련되고 생각의 깊이를 더해 주는 것 같아 독자로서 매우 뿌듯합니다. 읽고 보니 머리카락변천사는 미끼였고 생애 전반을 돌아보고 시간이 가진 의미를 머리카락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이었지요. 요즘,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이 `현재'와 일치하지 못한다는 분열이 일어나기도 해요. 현재가 자꾸 나로부터 빠져나가니까요. 그때가 가장 좋은 시절이었어라고 그리움에 잠기는 것, 그때 그렇게 해서는 안 되었어라고 후회에 빠져드는 것 모두 `잃어버린 현재'에 대한 느낌들이지요. 나이든 사람에게 현재는 어쩌면 `지나간 현재'일수도 있겠어요. 후회와 이미 지나간 일에 매여 일어나지 않을 시뮬레이션을 계속 돌린다면요.

기억나시나요? 헤어스타일을 규제하던 시절, 저는 학교에서 단속하는 모든 가이드라인 안의 순치된 짐승으로 살았기에 교무실에 불려가거나 운동장에 세워진 기억은 없답니다. 오히려 짧고 단정한 머리카락을 보고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잘생긴 남자 중학생 같다는 칭찬(?)도 들었어요. 그때 저는 여고 1학년이었고요.

그럼에도 누군가는 머리카락에 온갖 상상을 구현하며 반항과 자유와 간절함을 담아 보냈던 한때가 있었지요. 반에 꼭 그런 친구가 하나씩은 있잖아요. 방학과 동시에 머리를 개나리색으로 염색하고 개학과 동시에 다시 돌아오는 헤어스타일을 보며 늘 부러웠어요. 작품을 읽으며 문득 그때 그 친구가 생각이 나네요. 그 친구는 자신의 자녀도 자유롭게 양육했겠지요? 그녀가 어디선가 동네 미용실을 하며 유쾌한 일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요.

생의 많은 `한때'가 지나가고 있어요. 지나간 `한때'가 모여 삶이 되는 것이겠지요. 한때라 쓰고 시간이라 읽는 나이가 되어보니 시간이야말로 삶 자체가 되는군요. 시간의 존재 방식은 비물질적이고 불가시적이기에 주머니 속 지폐처럼 꺼내 규모 있게 사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대로 쌓인 과거는 마치 카페 테이블위의 포크를 대기엔 매우 아름다운 케이크처럼 가시적이기에 해석하고 평가하기 좋게 보이지요.

늘 새롭게 사고의 신진대사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에 대한 해석 또한 명쾌하고 보이지 않는 시간을 잡고 나란히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현재의 시간만이 변화의 순간이며 우리 삶의 전환을 일으키는 가능성의 순간이에요. 보이지 않는 시간의 바늘귀를 잘 통과해야만 어느 날, 초여름의 그늘아래 `한때'를 이야기하며 자신과 타인에게 너그러울 수 있답니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시간의 화두로 삼을 만하겠지요. `한때'만을 주절거리는 꼰대가 아니라 미래의 `한때'를 위해 지금의 `한때'를 잘 살아내고 싶은 욕망으로 꿈틀거리는 노을 빛 좋은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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