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생신이 지난주였다. 이집트 여행으로 찾아뵙지 못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화를 드리니 반가움과 서운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다. 여행 다녀오겠다고 한 말을 잃어버리신 모양이다. 전화를 기다렸다는 느낌이 역력했다. 시골집 서랍에 있는 작은 사진첩을 가져와 달라신다. 사람이 그립고 지난 추억이 그리운 것이다. 시차에 적응하려면 며칠 걸린 것 같지만, 나는 눈을 껌뻑이며 30여 분 거리에 계시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들고 간 선물 중에서 묵주를 발견하곤 가슴에 안는다. 엄마의 표정이 그리 편안해 보일 수 없다. 나는 묵주를 사 온 경의를 엄마에게 설명했다. 예루살렘에서 이집트로 피난 온 아기 예수님이 머물렀는데 그곳을 기리기 위해 서기 690년 성모마리아 콥트 정교회가 세워졌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고 소박했다. 예수님이 밟았던 땅을 직접 밟고 서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감회가 새로웠다. 교회 안에서 미사를 보고 있는 이들이 있어 조용히 내부를 관람했다. 성물을 판매하는 곳에서 엄마를 위해 성모님과 묵주를 모셔 온 것이라 하자 그 어떤 선물보다 좋아하셨다.
엄마와 마주 앉아 이집트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며, 묵주를 사게 된 경위, 등등을 이야기하자 노여움이 풀렸다. 점점 아이가 되어 가는 엄마가 안쓰럽다. 다행인 것은 치매약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어서 엄마의 기억력이 더 나빠지지 않고 있다. 요양보호사들이 침대 머리맡에 ‘천사 할머니’라는 이름표를 달아주었다고 내게 자랑하신다. 이곳에 적응하려고 노력하시는 엄마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구순의 엄마는 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성당에 가는 일을 낙으로 삼고 사셨다. 한주도 쉬지 않고 실버카를 밀며 마을 공소(작은 교회)로 향했다. 매사에 긍정적인 엄마는 신자들과 유대도 돈독했다. 어쩌다 우리 집에 와 계실 때면 어김없이 그분들에게서 안부 전화가 걸려 오곤 했다. 나는 늘 그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루 3시간씩 집으로 방문하는 요양사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하셨다.
육 개월 전 침대 난간에서 넘어져 119로 병원에 호송되었다는 소식에 놀란 마음으로 달려갔다. 한 달을 입원하고 퇴원 날짜가 다가오자 혼자 불안하셨던지 엄마는 요양시설로 가겠다고 했다. 다행히 올케언니가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어 그곳에 입소하게 되었다.
평소에 손에서 성경책을 놓지 않는 엄마께 지난번 방문했을 때 내 수필집을 드리고 왔다. 수필집에는 그리움이 묻어나는 대목이 여러 편 있다. 그중에는 삼십 년 넘게 생사도 모르는 엄마를 그리워하던 어린 시절의 애잔함도 있는데, 책을 다 읽고서도 책을 끼고 지내시는 것 같다.
엄마와 재회 이후 우리는 헤어져 있던 시간을 보상하듯 많은 추억을 쌓으려 노력했다. 엄마와 단둘이 일본으로 온천 여행을 다녀온 일도 그 노력 중의 하나였다. 엄마가 가져오라고 한 사진첩에는 그 여행에서의 행복했던 추억이 담겨있다.
접견을 마치고 돌아서는 내게 치맛자락 잡는 아이처럼 눈빛이 애잔하다. 현관 앞까지 따라 나와 주춤거린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하루에 한 번, 전화를 하겠다는 약속으로 안심시켰다. 자주 와 달라는 작은 목소리를 뒤로하고 돌아오는데, 왠지 모를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묵주를 돌리며 힘들었던 지난 일들을 잊고 천사 할머니가 편안한 날을 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