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아지와 매일 아침 달린다. 아침의 안개는 모든 것을 감추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여러 빛깔이 아름답게 어우러진다.
희미한 햇살이 안개를 비추며 풀잎 위에 맺힌 이슬방울을 반짝이게 하고, 나무들은 저마다의 색을 더해 물들어간다.
부드럽게 스치는 바람에 나뭇잎은 살짝 떨며 가을의 깊이를 더하고, 어제와는 다른 오늘의 새벽을 맞이하는 기분은 매일 특별하다. 이른 아침의 고요 속에서 마주하는 가을은, 날마다 새로운 정취로 가득하다.
이런 아름다운 계절, 옛 성현들의 독서는 특별했다. 정약용은 유배 생활 중에도 자연을 벗 삼아 깊은 독서에 몰두했고 오직 책읽기만이 인간이 짐승과 벌레의 부류를 벗어나 저 광대한 우주를 지탱하게 만든다고 하면서 독서야말로 우리 사람의 본분이라 하였다.
가을은 독서하기 좋은 계절이라고들 하지만, 야외 활동이 많아지면서 가을 도서 판매량은 최저라고 한다. 그럼에도 가을이 책 읽기의 적기라 하는 것은 기온과 날씨의 문제를 넘어, 우리의 마음이 더욱 차분해지고 사색에 잠길 수 있는 환경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연초에 간행된 `왼손으로 쓴 교육학'을 가을, 그것도 가을 깊숙이에 들어와서야 펴게 된 것도 아마 그런 연유일 것이다.
`왼손으로 쓴 교육학'은 저자의 오른손으로 쓰는 산문적이고 이론적인 무드의 글과 달리 시적, 동화적 무드로 쓴 글들의 모음이다.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저자의 교육학적 견해는 특별하다.
책에서 소개하는 흥미로운 이야기 중 하나는 `단설의 모험과 공짜 은총'이다.
과거 인도에서 하층민들은 경전을 읽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고, 이를 어기면 혀가 잘리는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이 잔혹한 금기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는 경전을 직접 읽고자 하는 열망으로 금기를 어기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에게 경전을 읽는 것은 인생에 단 한 번 주어질 `공짜 은총'과도 같았다. 우리는 매일 아무렇지 않게 책을 읽지만, 그에게 경전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분리형 두뇌'인데, 저자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달리, 문자라는 `분리형 두뇌'를 통해 자신의 지식을 외부에 저장하고, 전승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문자 덕분에 특정 개인에 얽매이지 않고 지식은 누구에게나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되었지만 이 순전한 편의 이면에는 위험을 동반한다. 그 위험은 문자가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생각을 바깥으로 분리해 내어서 `냉동된' 상태로 보존하는 것이라는 데서 발생한다.
즉 그 냉동된 문자를 가진 자가 곧 살아 있는 생각도 가졌다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최근 딥러닝을 장착한 기술들이야 오죽하랴! 문자, 컴퓨터 등 분리형 두뇌만 믿고 실제 우리의 뇌를 텅 빈 상태로 유지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인 일인가?
책과 문자가 만연한 시대에 사는 우리는 매일 마주하는 그것의 고마움을 잊기 쉽다. 하지만 책이 없던 시절, 지식은 소수의 특권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지금은 누구나 책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 고마움이 무뎌진 듯하다. 심지어 책을 읽기 위해 걸었던 목숨 같은 수고가 이제는 책 읽기 자체에 들어간다. 지금 책 읽는 시간이 고역으로 느껴진다면, 역설적으로 우리는 지식의 은총을 잊은 셈이다. 무심히 넘기는 한 장의 책 페이지가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오늘 한번 되새겨 보자.
수능을 치르는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문제지를 읽고 문제를 푸는 모든 과정이 지식에 대한 도전이자 탐험 아니겠는가? 많은 이들이 걷고 있는 수능이라는 길이 때로는 버겁고 힘들겠지만, 그 길의 끝에는, 분명 자신의 꿈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모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교육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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