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초 내가 살던 아파트는 남편 회사 사람들이 사택인양 모여 사는 곳이었다. 남편들이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인지 부인들 간에는 왠지 모를 힘겨루기가 있었다. 시댁이 넉넉해서 생활비 걱정 같은 건 안 하는 사람, 명문대 나왔다고 힘주는 사람, 패션에 민감해서 유행을 선도하는 사람, 갖가지 사람들이 아파트 앞 화단에 수다방을 열고 드나들었지만 그중에 가장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사람은 아들을 낳은 사람이었다.
일찍 결혼해서 아들 둘을 낳은 2동 304호의 이야기는 누구도 한눈팔지 않고 경청하였으니 말이다.
아들을 만들 때 자기는 식초를 먹고 남편에게는 커피를 먹였다는 둥, 아들 가진 배는 배에서 배꼽으로 내려오는 선이 똑 바르다는 둥, 304호가 내놓는 말은 모두 진리 같았고 그 한마디에 임산부들의 하루는 희비가 엇갈리곤 했다. 큰 애를 임신한 나도 304호의 말에 휘둘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올케언니가 한약을 지어왔다. 내가 아들 타령을 하며 퍽이나 안달을 떨었던 모양이다. 올케언니라고 해봐야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앳된 새댁이었는데 말이다. 언니는 낮 12시에 북쪽에 대고 기도를 한 후 한약을 먹으면 아들을 낳을 거라는 장담을 하며, 그 한약을 먹고 아들을 낳은 몇몇 사람의 이름을 대었다.
돈을 내고 먹어야만 효험이 있다며 문갑 위에 굴러다니던 십원짜리 동전도 하나 집어 갔다. 이미 성별이 결정된 태아에게 이 약이 효험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혹시?'라는 가당치도 않은 유혹에 마음을 걸고 정성껏 한약을 먹었다.
나는 아들을 낳을 거라는 은근한 자신감이 생겨 옆집 새댁이 딸을 낳았을 때에는 “다음에 아들 낳으면 되지.” 진심 어린 위로의 말도 건넸다. 내 배 모양을 보고 주변의 어른들이 던진 아들 배라는 단정적인 말이 자신감을 키웠던 듯하다. 그 충만한 자신감으로 낳은 아이가 우리 큰 딸이다. 큰소리 뻥뻥 치는 내 말에 귀가 혹해서 아들을 기대하던 남편은 밖에 나가 보면 다들 아들만 업고 다니는 것 같다는 볼멘소리를 하였고, 시어머니도 당신은 아들만 여섯을 낳았다는 자랑인지 질타인지 모를 속쓰린 말씀을 내게 하셨다.
같이 배가 불러 있던 딸부잣집 맏이였던 5층 새댁은 친정엄마가 막냇동생을 낳은 날의 비통했던 집안 분위기를 이야기하며 맏이인 자기가 엄마의 한을 풀어 주어야 한다는 말을 종종 했다. 이제 막 태어나 울음을 터트린 아이를 못 볼 것 본 것처럼 쳐다보는 집안 식구들의 험악한 눈총에 친정엄마는 아이를 뱃속에 다시 집어넣어 아들로 낳고 싶다며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고 했다. 다행히 5층 새댁은 우리 통로 네 명의 임산부 중에 유일하게 아들을 낳는 쾌거를 이루어 친정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렸다. 친정엄마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어서인지 새댁의 선한 성품 때문이었는지 나 못 낳은 아들을 낳은 5층 새댁에게는 크게 질투의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내가 딸 둘을 낳고 이사할 때까지 그 아파트의 아들 낳기 열풍은 여전했다. 숱한 비법을 전수받고도 끝내 아들을 낳지 못한 패자와, 보란 듯 아들을 낳은 승자들의 미묘한 갈등도 여전했다. 그 아파트를 벗어나고서야 나는 우리 딸들을 딸이 아닌 나의 소중한 핏줄로 아무 선입견 없이 볼 수 있었던 듯하다.
아들도 딸도 낳고 싶지 않다는 딩크족이 늘어난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같은 이야기가 머물던 신혼의 옛 아파트를 잠시 소환해 보았다. 이젠 그리움이 된 아파트 화단과 배부른 여인네들의 웃음소리….
저작권자 © 충청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