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이라 그냥 넘어가면 되고, 벽이라 그냥 지나쳐도 될까?
어머니는 오랜 세월을 같이 하면서 넘어야 할 것도 피하실 것도 없나보다. 오늘 저녁만큼은 무탈하게 지나가길 바랐지만, 역시나 아버지는 밥상을 세차게 내던졌다.
혼비백산하여 어머니를 쳐다보자, 어머니께선 그래도 네 아버지는 치우기 좋게 수돗가에 던진단다라고 말씀하셨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산다는 것이다. 사람은 내일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존재라서 서로를 믿고 사랑하며 더욱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한적한 시골에 우물을 보면 산새들의 울음에도 미세한 파동도 없는 고요를 느낀다. 사기그릇의 고요가 손끝에 달려 있다.
그릇에는 삶의 행복과 고뇌가 담겨 있다.
항상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면서 당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오로지 가족을 위해 일만 하셨다. 같은 세월을 놓고 보면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게 있나 싶다. 그것이 하루의 회복과 완성이었는지 모른다.
안방과 부뚜막 사이에 놓인 2층으로 된 아담한 찬장이다.
층마다 두 개의 문짝이 있다. 찬장이 오래되어 찬장 문을 열 때마다 삐거덕거리며 흔들거린다.
그래도 찬장 유리와 나무틀만 닦아도 반들반들하다. 찬장 안에 몇 개의 사기그릇과 놋그릇을 별로 쓸 일이 없었나 보다.
찬장
오래된 사기그릇의 온기가
손끝에 매달려 있다.
찬장 문 삐거덕 열리자
밥그릇 하나 꺼내어
밥을 키운다.
찬장 구석구석
하얀 밀가루 묻은 놋그릇 밑에
큰형의 수험료와
여동생 병원비가 조금씩 쌓여간다.
찬장이 춤춘다.
시 「찬장」 전문에서
아궁이 불을 때던 부뚜막과 찬장이 있던 부엌은 항상 따뜻한 곳이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이 배어 있다. 부엌문을 열고 나오시면서 밥 다 먹었으면 밥상 들고나와라. 학교 잘 다녀와라.라는 말씀에 희망과 온기가 있다.
부엌은 사랑의 완전체를 만드는 곳이다.
찬장은 자신을 지켜 킨 애물단지이자 상징적인 유산이다.
찬장 앞에 두고 수다를 떨던 누나들도, 옆집 이모들도 찬장에 대한 해학적 사랑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