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에 책을 읽히면 무엇이 좋냐는 물음을 종종 받는다. 그럴 때마다 교사 임용 후 얼마되지 않을 때 겪은 수업 시간의 이야기를 한다.
고등학교 3학년을 가르칠 때였다. 더운 여름날 오후 수능 대비 수업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한참 수업하다가 교실을 둘러보니 꽤 많은 학생이 졸고 있었다. 눈을 뜨고 있는 학생들도 나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뜨고 있는 것이 빤히 보였다. 수업을 잘 듣고 있는 학생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내 수업이 부족한 탓도 있었겠지만, 교사는 열심히 설명하고 학생은 받아적으며 외우고 이해하는 형태의 수업이 반복되는 교실 속에서 학생들이 하루종일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을 혼낼 수도 없었다. 결국 수업을 일찍 마치고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었더니 다들 그 말만 기다린 듯이 책상에 쓰러졌다.
그 시간 느낀 감정이 수업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교사가 아무리 열심히 무엇인가를 가르쳐도 학생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결국 무의미한 시간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나에게도 의미 있는 수업 시간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 뒤로 학생들과 수업 시간에 책을 읽는다.
교과서를 통해 주어진 글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의 생활과 조금 더 가까운 글을 선택해 읽으며 교사나 친구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나가는 시간은 교사가 일방적으로 학생이 알아야 할 것을 나열하고 학생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시간보다 생동감 있다.
몇 년 전 가르친 00이는 학교에 출석하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해줘야 하는 학생이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지도와 훈육이 어려워 바른 자세로 수업을 듣는 일은 기대할 수 없었다. 국어 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결석하는 날이 아니면 자기 자리에서 엎드린 채로 수업을 시작하는 날이 많았다.
책 읽는 시간에 00이에게 이종철 작가의 웹툰책 `까대기'를 권했다. 웹툰 작가를 희망하는 작가가 돈벌이를 위해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고 겪은 일을 웹툰으로 그린 책이다.
택배를 둘러싼 노동자들의 환경과 그들의 애환이 잘 드러나 있는 책인데 만화이다 보니 아무래도 책 읽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권하는 편이다.
그날도 엎어져 자고 있던 00이를 깨워 이 책을 읽어보라고 채근했다. 귀찮아하던 00이는 택배 상하차 이야기라는 말을 듣더니 느릿느릿 책장을 넘겼다. 다음 시간에도 자고 있던 00이를 깨웠더니 지난번 그 책을 찾았다. 두 시간에 걸쳐 책 한 권을 다 읽은 00이에게 재미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책이 현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며 자신이 경험한 택배 상하차 현장을 책과 비교하며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교과서와 문제집 속 지문으로는 끌어낼 수 없었던 이야기였다.
수업은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든다. 그런데 교사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지식을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끼면 수업은 힘을 잃는다. 하지만 학생들이 자신의 관심사와 경험을 통해 배움을 만들어갈 때, 그들은 비로소 수업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 00이처럼 평소에는 무기력해 보이던 학생도, 자기 경험과 연결된 배움에는 흥미를 보이고 참여할 줄 안다.
배움의 주인이 교사가 아닌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를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
학생들은 자신이 선택한 책을 통해 스스로 사고하고, 자기 경험과 연결 지으며,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면서 능동적인 배움의 주체가 된다.
더운 여름날 오후, 졸음이 가득하던 교실에서 시작된 나의 고민은 확신이 되었다.
수업은 교사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진정한 배움은 학생들이 움직일 때 일어난다. 배움의 주인은 언제나 학생이어야 한다.
구용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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