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 저수지 축조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청주시 미원면 대덕리 큰덕골엔 아직 수몰민이 남아있다. 마지막 수몰민이 떠나면 큰덕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마지막 수몰민 배영규씨(86)의 집은 공사장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저수지 축조공사에 분주하게 오가는 중장비에 갇혀 위태롭기만 하다.
배씨가 아직도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마땅한 이주지를 찾지 못한 탓이다. 고령의 배씨는 남은 여생을 고향 근처에서 보내고 싶었다. 배씨는 저수지 축조가 결정되기 전인 지난 2015년 집을 신축할 정도로 고향에 남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그런데 졸지에 태어나서 한평생 살아온 고향마을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황당한 상황이지만 배씨는 국가가 하는 일이니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 사업주체측이 약속한 이주단지로 옮기기로 했다. 조성예정지는 마을 가까운 곳이었고, 실현되리라 믿었지만 배씨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이주단지 조성은 커녕 고향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보상금과 이주비 몇 푼 쥐어 준 것이 믿었던 국가의 이주대책 전부였다.
이주단지 조성 무산후 배씨는 고향 인근에 새로운 터를 잡기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이주단지 조성이 지지부진한 사이 10여가구의 마을사람들이 흩어지자 사업주체측은 이런저런 핑계로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이주단지 무산에 따른 실망과 배신감보다 당장 이주할 곳을 찾지 못한 것이 더 큰 스트레스가 됐다. 최근 배씨는 고령의 나이에 수년간 홀로 버티다 몸이 쇠약해졌다고 한다. 그래도 고향을 포기할 수 없어 떠나지 못하고 있다.
저수지 준공이 코앞인 상황에서 배씨는 이주 압박을 받고 있는 처지에 놓였다.
사업주체인 농어촌공사는 여전히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주대책 마련, 보상 등 수몰민들을 위해 할 일을 다 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배씨가 스스로 집을 비워주길 기다리는 분위기다.
농어촌공사 뿐 아니라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자치단체와 지역정치권도 뒷짐을 지고 있긴 마찬가지다.
대덕리 큰덕골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업은 다목적농촌용수개발사업으로 국가보조금지원사업이다.
2019년 충북도가 고시하고 한국농어촌공사 청주지사가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국고 270억원, 시비 43억 등 총 313억여원이 투입됐다. 사업을 승인하고 예산까지 투입한 충북도와 청주시는 수몰민 이주대책을 고민하지 않는 모양새다.
특히, 수몰민들이 원했던 곳에 이주단지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충북도는 주민들을 외면했다. 이주단지 조성을 위한 농업진흥지역 해제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어렵다고 하자 농업보호구역 변경이라도 해달라고 충북도에 요청했다. 하지만 도는 그마저도 묵살해 이주단지가 무산됐다. 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지자체가 한 농촌마을을 소멸시킨 셈이다.
해당사업비를 국비로 확보했다고 홍보에 적극적이었던 지역정치권 역시 관심조차 없다.
작은 농촌마을 큰덕골의 소멸과정을 보면서 국가와 지자체를 믿고 정책과 시책에 따를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이제라도 지자체와 관련기관들이 마지막 남은 수몰민 이주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 단 한 명이라도 국민과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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