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나흘라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나흘라스
  • 김미소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전문관
  • 승인 2024.10.3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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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20세기를 대표하는 순수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1889~1951). 그는 소위 `재벌집 막내아들'로 그의 아버지는 당시 오스트리아를 포함해 유럽 전역의 철강 산업을 주도하던 소문난 철강재벌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유년기부터 예술분야에 재능과 관심이 있었지만, 가업을 잇길 원했던 아버지의 강요로 기계공학을 전공하였다.

1908년 공학 학위를 취득한 비트겐슈타인은 항공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영국 맨체스터로 유학길에 올랐다. 항공기 엔진 설계를 연구하던 공학도 비트겐슈타인은 훗날 그의 지도교수인 버트런드 러셀이 화이트헤드과 함께 공동 집필한 `수학 원리'를 읽으며 철학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트겐슈타인은 러셀이 강의하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 공부를 시작하였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유고집은 바로 비트겐슈타인이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1914년부터 생애 말까지 그의 철학적 고민과 작업에 대한 기록들이다. 독일어 “나흘라스(Nachlass)”는 한국어로 유고 또는 유산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망자가 작고 후 남긴 물품이나 문서를 지칭한다. 따라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나흘라스는 그의 철학적 사유가 담긴 미출판 원고와 사적 기록을 통칭한다.

이 유고집은 비트겐슈타인 사후 그의 학문적 동료이자 케임브리지 대학교 후임 교수인 게오르크 헨릭 폰 라이트(1916~2003)에 의해 완전하고 체계적인 형태로 목록화되었는데, 전체 페이지 수가 무려 2만 장에 달한다. 또한 유고집은 오늘날 비트겐슈타인 생전 출판된 유일한 철학서인 『논리-철학 논고』가 탄생하게 된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 이 유고집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캐나다의 맥마스터대학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이 소장기관들이 소재한 오스트리아, 캐나다, 네덜란드, 영국은 2017년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유고집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공동등재하였다.

현대 철학사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위대한 업적과 명성은 그의 유고집을 통해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트겐슈타인 사후 유고집을 관리하는 신탁자들에 의해 정리·출간된 `철학 탐구'는 수십 년에 걸쳐 발전해 온 비트겐슈타인 철학에 대한 논의가 지속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또한 이 유고집이 한국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면서 비트겐슈타인 철학과 이를 계승하는 학파들이 생겨나며 국제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유고집은 단순 철학서를 넘어 전 세계 철학사와 사상사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유고집에 기록된 비트겐슈타인의 사유 방식은 논리와 언어,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현대 철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네스코는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유고집이 인류의 지적 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여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승인하였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은 인류의 공통된 언어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기록하고 전승하는 데 있어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가치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언어로 기록된 세계기록유산을 통해 우리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확대해 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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