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소하고 담박한 삶
검소하고 담박한 삶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4.10.24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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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이끌어갈 리더라면, 아니 이 세상의 모든 구성원이 사치스러운 삶을 지양하고, 검소한 삶을 지향해야 한다. 그런데 사치스러운 삶인가 검소한 삶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소비의 규모나 행태로써 판단할 일이 아니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꼭 필요하고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명품관에 가서 30분 만에 삼천만 원 상당의 상품들을 대량 구매했다고 해도 전혀 사치스러운 짓이 아니다.

반면 꼭 필요하지 않음에도, 타당한 이유도 없이 길을 가다가 거리의 노점에서 눈에 띄는 천 원짜리 물건 하나에 마음을 빼앗기며 습관적 구매를 한 것은 검소한 삶과는 무관한 일이다.

그 어떤 욕심 욕망과 습관적 소비심리에도 흔들리지 않는, 0점 조정된 마음으로, 자신의 생활 규모 및 처한 상황에 맞춰 꼭 필요한 것이라면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있으며, 필요치 않은 것은 공짜로 거저 줘도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고 즉시 사양할 수 있는 삶이 멋지고 검소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이 매 순간순간 눈 앞에 펼쳐지는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함으로써, 일의 시종(始終)과 진퇴(進退) 등이 명확한 가운데, 물처럼 흘러가는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유교 및 불교와 기독교는 `명덕(明德), 반야 지혜, 성령의 빛'을 밝힐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21세기를 이끄는 참다운 리더가 되는 전제조건이며, 모든 인류가 행복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명덕 및 반야 지혜, 성령의 빛을 밝히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선, 희로애락 등의 감정이 일어나기 이전의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中)의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중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바로 마음의 0점 조정이다. 마음이 0점 조정되었다면 사치스러움이니 검소함이니 하는 양변(兩邊)을 여읨 없이 여읨으로써 사고 싶을 때 사고, 팔고 싶을 때 파는 대 자유의 멋진 삶을 살아가면서도, 이 세상에 이득으로 작용할 뿐, 세상에 그 어떤 손해도 입히지 않는 아름다운 삶을 누리게 된다. 0점 조정이 된 저울에 물건을 올려놓으면 그 물건이 누구의 것인가에 상관없이 정확하게 무게를 재듯이, 중(中)의 마음에서 발해지는 지혜로운 생각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바른말과 바른 행동으로 이어지며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희로애락이 일어나기 전의 중(中)의 마음을 회복하지 못함으로써 마음의 0점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 공자님께서는 `奢則不孫(사즉불손) 儉則固(검즉고) 與其不孫也(여기불손야) 寧固(영고)' 즉, 사치스러우면 겸손하지 않고, 검소하면 고루하기 쉬운데, 겸손하지 않은 것보다는 차라리 고루한 것이 더 낫다는 말씀을 하신 바 있다. 사치스럽고 겸손하지 못한 삶 보다, 검소하고 고루한 삶이 오히려 군자의 삶에 가깝다는 가르침이다. 이 밖에도 공자님은 “未若貧而(미약빈이락) 富而好禮者也(부이호례자야)' 즉, 가난해도 즐길 줄 알고, 부유하되 예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의 가르침을 강조하셨다. 공자님은 또 `士志於道而恥惡衣惡食者(사지어도이치악의악식자) 未足與議也(미족여의야)' 즉, 도에 뜻을 두고서도 값싼 옷을 입고 값싼 음식을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선비와는 함께 의논할 수 없다는 말씀을 통해 사치스럽지 않은 검소한 삶, 자신의 처한 상황과 자신의 분수에 맞는 담박한 삶을 누리라고 강조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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