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버스터미널이다. 차가운 날씨에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어디론가 가기 위해 모여든다. 나 역시 조금은 설렘으로 그곳에 함께 있다.
자가용이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또 다른 편리함 때문인지 몰라도 잠깐 여유에 젖어 들어간다.
터미널의 풍경마저도 이색적으로 다가오니 신기하다. 대합실 사람들의 시선은 출발할 버스를 기다리느라 대부분 밖을 향하고 있으며 더러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느라 지루하지 않은 모습들이기에 그렇다.
기다리는 시간이 짧건 길건, 한편의 무한한 여유이다. 대합실의 딱딱한 의자도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늘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혼자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흡족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떠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휴식이 되며 고단한 삶을 재충전하는 기회가 된다. 내 안의 다른 나와 동행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낯설다. 대합실을 서성이고 있는데 내 나이와 비슷한 여자가 말을 걸어 온다.
지난밤에 제대로 잠을 못 자고 나왔다면서 목적지까지는 다섯 시간을 가야 한다나. 갈 곳을 향하는 안도감과 약간의 푸념이 섞인 어조였다. 못 들은 체하고 있기가 민망해서 그냥 미소로 바라봐 주어야 했다.
얘기인즉 혼자 사는 언니가 며칠 집을 비운 사이 애견들을 돌보기 위해 왕복 열 시간이나 버스를 탄다고 한다.
강아지 주인은 결혼도 하지 않은 독신이라 했다. 그러기에 그 먼 길을 동생이 와서 챙겨줘야 하는 자매의 사연이 한편 따뜻하게 들려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누군가의 삶을 단면으로 보았다고나 할까. 그리고 반려견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떠오르는 거였다. 대부분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혼자이기보다는 반려견과 함께 가족의 형태로 살아가는 모습에서 나름대로 인간애를 느낄 수 있었다. 작은 여유였다. 그리고 묻지도 않았던 얘기들을 늘어놓은 그 사람이 낯설지도 이상하지도 않았다.
묵묵히 시선을 어디에 둘지 무표정하게 있기보다 잔잔한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하는 것도 부담되지 않았다.
시간이 되자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그는 먼저 떠났다. 쉽사리 처음 본 사람과 말문을 트기 어렵기만 한데 스스럼없이 나누었던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하고 소시민적이었다고나 할까. 거북한 내용도 아니었을뿐더러 마주하는 동안 편안했다. 처음 본 사람을 무조건 어색한 눈으로만 보려 했던 나와 비교가 되는 것이었다.
그날의 이야기는 지금도 은은하게 내 가슴에 가라앉아 있을뿐더러 낯선 사람과의 벽이 낮은 하루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여유가 필요하다. 아무리 초면일지라도 가까운 거리에서는 작은 눈인사, 존중하는 어조가 전해진다면 먼저 나부터 마음이 열리며 가벼워지리라 믿는다.
조금 덜 익은 모습으로 비추어진들 어떠하랴. 무겁고 차가운 느낌보다 온기가 풍기는 그런 세상을 살고 싶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