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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승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문화산업본부장
  • 승인 2024.10.15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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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현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문화산업본부장

웅~~~웅웅~웅~~~~, 웅~~~웅웅~웅~~~~,웅~~~웅웅~웅~~~~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어김없이 들리는 소리다. 한쪽이 아니다.

근처 편의점 쪽에서 들리는 기계 소리는 작은 소리다.

아침에 시작해서 두어 시간 건너 소리가 난다. 낙엽 쓰레기를 가리지 않고 불어서 날려 보낸다. 그런들 조금 있다 바람이 불어 편의점 앞으로 모인다. 그러니 시간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웅웅거린다. 잊을 만하면 웅~ 웅~, 손님이 줄지어 오지 않는가 보다.

학교 쪽도 마찬가지다. 그리 많은 낙엽이 쌓였을 것 같지 않은데, 아침 등교 전부터 교문을 열면서부터 시작되는 소리다. 편의점 장비보다는 비싼 기계인가 보다. 소리가 제법 묵직하다.

편의점과 경쟁이라도 하듯, 아니 초보자의 현악 이중주인 듯하다. 제법 소리가 퍼져나간다. 특별히 관중을 모을 필요가 없다. 집안에서 문을 닫아도 들릴 성능이다. 파워앰프도 없는데 말이다.

이제 세 번째, 막강한 힘이 있는 자가 등장할 시간이다. 콘트라베이스다. 근처 대학교 운동장 쪽에서 나는 소리다.

한여름부터 하루도 거른 적 없다. 가장 육중한 소리다. 아마도 커다란 엔진을 단 최고가가 송풍기인듯하다. 그만한 면적을 감당하려면 그 정도 성능의 장비를 갖춰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가을 초입까지 아침부터 푹푹 삶아대는데 소리가 더 덥게 만들었었다. 이제 좀 선선해진다 싶어 다행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여전히 고성능을 자랑하고 있다. 푹푹 삶아내던 시간에 들렸던 그 소리가 여전하다. 기계가 점점 과열되는 듯하다. 하긴 날려 보내야 할 것이 더 많아지니 힘에 부치겠다 싶다.

작은 빗자루를 들었다. 이제야 대추가 색을 갖춰가고 있다.

몸집을 제대로 키웠으니 당연히 색을 바꿔야 할 시간이다. 그러며 그간 달았던 잎을 떨군다. 이제 거추장스러워진 걸까? 비가 와서 무거워진 걸까? 바람에 실려 여행을 보내는 것일까? 사방으로 흩어진 낙엽을 모은다. 녹녹지 않다.

흙바닥일 때는 잘 쓸렸는데, 반질반질한 블록 위의 낙엽은 쉬 쓸리질 않는다. 심지어 밤새 내린 이슬에 젖어 쓸어 모으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크기도 작고, 얇은 비닐 같다. 윗부분이 반질반질 하니 뒤집혀 있으면, 차라리 손으로 집는 게 나을 듯, 하지만 숫자가 헤아려지지 않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햇빛이 들어 마를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예전 생각에, 이른 아침 골목길에서 들리던 비질 소리에 깨곤 했었다. 아버지가 비를 드신 것이다. 덜 깬 눈을 비비며 싸리비를 들고 따라나선다.

댑싸리비는 닳고 닳아 거의 수명을 다해, 올해 자란 댑싸리로 비를 맬 때까지는, 싸리비를 썼다. 내 키를 넘는 빗자루로 비질하는 데 여간 힘에 부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몰래 할머니가 아끼던 수수비를 들고나왔다가 혼나기도 여러 번, 수수 빗자루는 부엌에서 쓰라고 매준 것이었고 밖에 가지고 나가는 걸 싫어하셨던 생각이 난다. 그래도 내 키에는 수수비가 딱 맞았다. 아버지께서 작은 댑싸리로 매어주신 것이 있었는데 그것마저 가을쯤이면 닳아 몽땅 빗자루가 되어, 잿간으로 갈 신세였다. 아침부터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대문 밖을 쓸고 들어와 마루에 걸터앉는 순서였다. 매우 힘들 때는 할머니가 걸레로 훔친 마루에 벌러덩 누웠다. 그러면, 그 위는 바람이 지나간다. 이마의 땀을 훔치고 지난다. 뒤이어 밥 짓는 냄새와 낙엽 태우는 냄새를 코로 들인다.

예전의 낙엽 태우는 냄새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젠 비질 소리를 듣기 어렵다. 바주카포를 연상할 정도의 가공할 만한 무기(?)가 굉음과 함께 괴력의 바람을 만들어 낸다. 그러든지 말든지, 비질하고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식혀줄 살랑바람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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