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인을 걷다
회인을 걷다
  • 강대헌 에세이스트
  • 승인 2024.10.1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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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헌의 씨앗 한 톨
회인의 돌담길.
회인의 돌담길.

회인의 거리에 등불이 걸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삼일에 걸친 야행(夜行)이 끝나는 날이 되니, 마음이 급해졌다. 때마침 토요일 저녁은 허허로워서 발길을 댔다.

청사초롱에 불이 들어오기 전까지 풍류(風流)를 즐길 만한 곳을 어슬렁거렸다. 인산객사(仁山客舍), 회인양조장, 동헌 내아(東軒 內衙)를 돌담길 따라 걷다가 만났고, 주황 코스모스가 떼 지어 살랑이는 꽃밭에선 찬찬히 숨을 골랐다. 그러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따라서 자박자박 걸었다.

오장환(吳章煥) 생가 앞에 꾸며진 계단식 무대에서 어쿠스틱 기타를 멘 `바위섬'의 가수 김원중이 시(詩)를 노랫말로 삼은 곡들을 유장하게 불러 젖혔다.

오장환의 `나의 노래' 시비(詩碑)를 가끔씩 바라다보면서, 그는 이별과 슬픔을 끝내고 만나자는 `직녀에게'라는 노래도 함께 불렀다.

어스름이 짙어 가자 돌담에 넝쿨처럼 걸쳐진 알전구와 거리의 하늘과 멋스럽게 어울리는 청사초롱이 환해졌다. 일찍이 고려(高麗) 때 보은 땅이었던 곳이 회인이라는 것도 몰랐던 내가 마음의 소원을 이룬 사람처럼 들떴다.

미처 풍림정사(楓林精舍)를 구경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오늘 발을 딛고 선 땅의 이름 `회인(懷仁)'의 뜻도 되새겨 보았다. 어진 생각과 마음을 품은 사람이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사위를 둘러보니, 회인의 야경(夜景)과 야로(夜路)와 야사(夜史)와 야시(夜市)와 야화(夜話))와 야식(夜食)과 야설(夜設)과 야숙(夜宿)을 토실토실한 밤톨처럼 망태기에 담은 야행에 어느새 외지인이 몰려들고 있었다.

굽이굽이 휘어진 피반령 고개를 다시 넘어 청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내년의 야행이 지켜야 할 기약(期約)처럼 여겨졌다. 여러 지역의 문화유산 야행을 폭넓게 즐기는 것도 당신의 삶을 싹 틔우는 씨앗 한 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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