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에서 삶의 이정표를 만나다
가을 산에서 삶의 이정표를 만나다
  • 이혜연 청주동주초 행정실장
  • 승인 2024.10.13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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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다.

이 가을을 온전히 즐기고, 튼튼한 몸과 마음으로 다가올 겨울을 나고자 산행을 준비한다. 백제시대에는 일모산, 신라시대에는 연산, 그 뒤에는 승병을 길렀던 곳이라 하여 양승산, 양성산으로 불렸던 산이 우리의 목적지다. 양성산은 청주에서 가깝고 대청댐의 수려한 경관을 조망할 수 있어 인기가 많을 뿐만 아니라, 두 번의 등산 경험이 있어 일행에게 추천했다.

출발은 좋았다. 화장실 옆 계단으로 한참을 올라갔다. 오르는 길에 들리는 매미 소리가 찬란했던 지난 여름날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 서글프기까지 했다. 양성산 돌탑에서 사진을 찍은 후 가져간 간식을 먹으니, 산에서 먹는 간식은 역시 꿀맛이다. 휴식을 취한 후 나라의 태평함을 기원하는 국태정(國泰亭)으로 향한다. 이 국태정은 우리에게 팔각정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자에서 보는 대청댐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푸른 물 위, 하얀 안개를 보니 역시 장관이다. 가까이서 보는 안개는 갑자기 시야를 가려 운전하기 어려웠는데, 멀리서 보는 안개는 아름다운 경치의 완성이다. 정자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논과 밭에 누렇게 익은 농작물이 가을임을 알린다. 우리 동네가 보이는지 한참을 찾아보다가 길을 잡아 내려왔다. 국태정으로 가는 길은 계단이 있어 숨이 턱에 닿게 올라갔는데, 지금은 평평한 능선을 걸어간다. 이상하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수종인 밤나무가 줄지어 있다. 그렇다. 우리는 길을 잘못 든 것이다. 두 번이나 와 봤다는 자신감에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그것도 일행과 함께. 전에 와 본 것 같은 오솔길을 걸으며, `어떤 길로 가든 한 곳으로 통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계속 걸었다.

불안한 마음이 커질 때쯤, 밑으로 이정표가 보였다. 다가가서 보니 우리의 목적지인 주차장과는 반대 방향인 작두봉을 향해 걷고 있었다. 방향을 돌려 국태정으로 가기로 했다. 다시 위로 올라가 왔던 길로 되돌아갔으면 좋았으련만 우리는 이정표가 있는 골짜기 옆길을 택했다.

미끄러질 듯 내려가면서 이 길이 맞는지 궁금할 때쯤 산악회에서 매어놓은 리본을 보고 헨젤과 그레텔처럼 길을 따라갔다.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올라오는 사람이 있다. 길 잃은 우리에게 길을 알려줄 귀인이다. 반가운 마음에 크게 인사를 하고 주차장을 어떻게 가느냐고 여쭈니,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큰길이 나오면 오른쪽으로 꺾어 올라가라고 알려주신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알고 나서야 길을 잃어도 119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니 마음을 편하게 갖자는 시답지 않은 농담이 나온다. 길 잃은 길잡이로서 얼마나 긴장했던지 큰길을 마주하고 나서야 긴장이 풀려 쉴 곳을 찾았다.

아는 곳에서 쉬니 마음이 더 편하다. 산에서 내려와 뜨끈한 칼국수를 먹으며 오늘의 산행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두 번 와 봤다는 자만심으로 등산로를 잘못 선택했을 때 충분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던 밤나무를 발견했을 때, 내려올 때 정자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을 때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길을 잘못 들었으니 다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이 어려워 왔던 길을 아님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상황도 돌릴 수 있었다. 아마 우리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깨닫고 도움이 절실하지 않았더라면 지나가는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오늘 한 번뿐이랴? 지금까지 나에게 귀한 말씀을 건네셨던 분은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단지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겸손한 마음으로 실수를 인정하고 방법을 찾는 것. 그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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