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어느 절이 합격기원 기도발이 잘 받느냐는 질문을 왕왕 받는다. 대입시험이 이제 그리 멀지 않았다는 얘기기도 하다.
여기저기 절밥 얻어먹고 다닌 값은 해야겠으니 `기도발이 좋은지 안 좋은지는 제가 경험한바 없어 솔직히 모르겠으나'라는 진심 담긴 앞말은 뚝 자르고 “들은바와 본 바로는 어디 어디 절이 좋다고 합니다. 부디 좋은 결과 있기를 기원합니다”로 답한다.
묻는 이의 거주지에 따라 답도 다르다. 남도사람들에게는 남해 남산 보리암을 대구 경북은 팔공산 갓바위를 충청도는 계룡산 갑사 중악단을 주로 추천한다. 그래도 불자(佛子)로서 양심은 있어 직접 다녀온 곳만 추천한다.
“텄다 텄어. 새길 나서 다 텄다. 신심(信心)은 마음이기는 하나 마음이 한시도 몸을 벗어난 적 있었던가.”
해수관음성지 기도터인 보리암을 그 옛날과 다르게 차를 타고 쉽게 오르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흘리는 노승(老僧)의 걱정 섞인 넋두리였다. 새길 나서 차타고 쉬이 올라가니 신심도 얕아지고 그로인해 기도발도 약해졌다는 것이 노승(老僧)의 지론이었다. 이성계도 이곳을 오를 때는 말에서 내려 걸어 올랐다고 덧붙었다.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설득됐다. 그리하여 쉬운 길 버리고 굳이 산길 걸어서 들숨날숨 턱까지 채워가며 올라간 보리암이었다. 남해 바라보고 서 있는 해수관음상 앞에서 삼배(三拜)도 등 따가워 겨우 숙였던 8월이었다.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
어느 가을 한 계단 한걸음에 백팔염주 한 알씩 돌리시며 `약사여래불' 읊조리며 관봉 갓바위 돌계단 오르시던 노보살님은 그 걸음으로는 염주알 1,365번을 돌려야만 그제야 모습 보여주신다는 갓바위 부처님 앞에서 무엇을 비셨을까.
“대한민국국군 별단 사람 중에 여기 한번이라도 안 들른 사람은 없다.”고 단언하던 계룡산 갑사 중악단에서 만났던 아들만 셋이라던 보살님이 그토록 바라던 둘째 아들은 그해 공무원이 되었을까.
그러나 이곳들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곳이기에 이곳을 이미 알고 있는 이들은 이내 식상하다며 추천할만한 다른 곳이 없느냐 되묻는다. 중요한건 어디서가 아니라 무엇을 기도하는가이다. 그리고 그 기도가 이루어지기 위해 무엇을 행하고 있느냐이다. 노력도 없이 기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얼마나 있을까. 신령님 전 빌고 빌던 우리네 할머니들의 기도가 그렇고 조선 세운 이성계의 기도가 그렇고 계룡산의 기도와 계룡대의 별들이 그렇다.
그래도 추천을 원한다면 한곳을 더 추천하겠다. 그러나 이곳도 이미 유명한 곳이다. 암행어사로 잘 알려진 박문수의 일화가 전해지는 절집이다. 안성 칠장사(七長寺)다. 박문수는 암행어사로는 잘 알려져 있으나 그가 `고시폐인'인걸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30대 급제자로 과거시험 8수생이다. 그는 마지막 응시라고 생각하고 한양으로 시험 보러 가는 길에 이곳을 들른다. 나한전에서 걸망에 있던 유과를 공양물로 올리고는 간절히 기도하고 잠이 든 밤이었다. 기도가 통했는지 그날 밤 꿈에 나한(羅漢)이 나타나 과거시험 시제(詩題)를 알려줬는데 그것이 그대로 과거 문제로 출제되어 장원급제했다는 일화다. 이것이 몽중등과시(夢中登科詩)이다.
손님이 들려준 본인 이야기도 있다. 쌀 한 되 값과 초 값 여기에 문수다리에 소원지 묶을 돈 다 합해도 만 원짜리 몇 장이면 된다고 했단다. 큰 아들이 수능을 얼마 앞둔 어느 날 올케 따라 기도하고 온 곳이 칠장사라고 했다. 좋은 학교 갈 성적이었던 것도 알았지만 그날 그 기도로 실수 없이 원하는 대학에 가게 돼서 감사하다. 그녀의 겸손한 후일담이었다. 무엇을 기도했냐고 물었다.
“합격다리 소원지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게 해주세요.”
그녀의 큰 아들은 현재 서울대 3학년이다.
시간의 문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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