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 천국
사기꾼 천국
  • 이재경 기자
  • 승인 2024.09.2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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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암호화폐의 천재, 블록체인 산업의 선지자라는 칭송까지 듣다가 사기꾼으로 몰려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고 있는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에게 비상이 걸렸다.

본인의 희망대로 한국행이 아닌 미국에 송환돼 재판을 받게 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외신에 따르면 권씨를 억류하고 있는 몬테네그로 대법원은 최근 하급심인 고등법원과 항소법원이 권씨를 한국으로 송환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자국의 법무장관이 송환 대상 국가를 (한국으로) 결정하라고 명령했다.

앞서 몬테네그로 고등법원은 우리나라의 송환 요청 공문이 미국보다 먼저 도착했다는 이유로 권씨의 한국행을 결정했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의 결정으로 권씨의 미국행이 유력해졌다.

권씨가 미국이 아닌 한국행을 원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사기꾼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관대한 한국의 형법 때문이다.

권씨는 달러와 연동한다는 루나, 테라라는 코인을 발행해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약 50조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혔다. 한 때 1개당 10만원을 호가하던 코인의 가치는 하루아침에 0원이 됐다. 한국에서도 20만명이 3000억원 규모의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권씨가 한국에서 재판을 받으면 그가 벌어들인 범죄 수익을 단 한 푼도 토해놓지 않아도 15년만 징역을 살면 교도소에서 나와 정상인처럼 살 수 있다. 사기꾼에 대한 한국 법원의 법정 최고형 양형 기준이 15년이기 때문이다. 50조원이 아니라 1000조원의 사기를 치다가 붙잡혀 재판을 받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15년만 징역살이를 하면 사회에 나가 당당히 햇빛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미국은 지식인들이 저지르는 금융 사기 범죄에 대해 가혹한 처벌을 한다. 기소된 각각의 혐의에 대해 형량을 합산해 벌을 주는 병과주의(倂科主義) 양형을 한다.

실제 미국 맨해튼 연방법원은 2009년 다단계 금융사기 등 11개 혐의로 기소된 메이도프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에 대해 징역 150년, 벌금 1700억 달러를 선고했다. 당시 71세였던 그는 끝내 교도소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또 2000년 뉴욕의 사업가 와이스는 보험회사에서 4억5000만달러 규모의 사기 범죄를 저질렀다가 징역 845년을 선고받았다.

지난 1일 대구에서 8400만원의 전세금 사기를 당한 피해 여성이 남편과 자녀를 두고 생을 포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2022년 인천 미추홀구 전세 사기 사건 이후 목숨을 끊은 사람은 공식 통계로만 8명이다. 국내에서 2만여명, 2조5000억원 규모의 피해가 발생한 전세사기 사건의 범인들이 최근 잇따라 법정에 서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내려지는 형벌은 최고 징역 15년형이 고작이다. 재판부가 어처구니없이 감형을 해준 경우도 있다. 665세대 536억원의 피해를 입힌 인천 사기 사건의 피의자들은 1심에서 최고 징역 15년이 선고됐으나 2심에서 일부 무죄판단을 받으며 7년 징역형으로 절반 이상 감형이 됐다. 피해자들은 오늘도 절규한다. 돌려받을 가능성이 `제로'인 상황에서 지금도 여전히 제3, 4의 피해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젠 형법의 양형 규정을 바꿔야 한다. 서민들을 울리고 죽음으로 내모는 사기 사범은 마땅히 엄벌, 극형을 받도록 해야 한다. 병과주의 양형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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