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온다. 고향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명절은 없던 추억까지 소환한다. 한때는 밤새워 기차표를 끊고 송편을 빚기도 했지만 다 옛일이다.
기성세대에게 명절은 힘든 일상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쉼이었다. 그러나 젊은 세대에게 명절은 하기 싫은 숙제를 하듯 스트레스로 느껴진다.
시대가 변한 탓인지 고향에 대한 아련함도, 부모를 향한 애틋함도 예년만 못하다.
추석 긴 연휴가 설렐 만도 한 데 이젠 명절 자체가 부담스런 날이 됐다.
SK커뮤니케이션즈 시사 Poll 서비스 `네이트 Q'가 최근 성인남녀 62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추석 연휴 가장 부담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2%가 `부모님과 친인척 선물 및 용돈'이라고 답했다.
이어 명절 음식 준비 부담(22%), 귀성길 스트레스(10%), 친인척들의 잔소리(9%) 순으로 나타났다.
물가 상승, 고용 악화, 장기간의 경기 불안 속에서 추석은 가족 간의 정을 나누기보다 가벼운 지갑으로 용돈을 준비하고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발걸음조차 무겁게 만드는 듯싶다.
특히 여성들은 명절 음식 준비의 부담을, 20대는 잔소리에 대한 압박을 호소하며 세대와 성별 간 명절에 대한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 여실히 드러냈다.
여성 응답자 26%는`명절 음식 준비'를 추석 명절이 부담스러운 이유 1위로 꼽은 반면 남성 응답자는 10%에 그쳤다.
또한 취업이나 연애, 결혼 등에 대한 고민이 많은 20대는 추석이 부담스러운 가장 큰 이유로 `명절 잔소리'를 꼽았다.
이젠 젊은 층에게 추석 명절은 즐거운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고 사회적 압박을 견디는 고통의 시간으로 전락했다.
인터넷 카페 댓글에는 `내 나이도 제대로 기억 못함. 대학생인지 직장인인지~근데 애는 빨리 낳으라고 하니 그딴 소릴 듣고싶지 않음', `미혼일 땐 개꿀 긴 휴일인데 결혼하니 지옥', `물가도 많이 올라 용돈과 선물 사고 교통비 빼면 남는 것도 없고 친척과 만나 술과 음식을 접대하는 것도 부담' 등등. 명절 스트레스와 함께 시대 흐름에 맞춘 변화의 필요성을 토로하는 글들이 줄을 잇는다.
이런 이유로 명절에도 고향이나 부모를 찾지 않고 남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 혼자 즐기는 삶을 선호하다보니 어느덧 혼밥(혼자 밥먹기), 혼술(혼자 술 마시기), 혼영(혼자 영화보디), 혼공(혼자 공연보기), 혼행(혼자 여행하기), 혼놀(혼자 놀기)이 트랜드가 됐다.
추석 명절에도 혼자 보내고 싶어하는 혼추족(홀로 추석을 보내는 사람)을 위해 편의점에는 `한가위 명절 도시락', `추석 소불고기 전골 도시락', `풍성한 한가위 정찬도시락', `한정식 떡갈비 정찬도시락' 등이 진열돼 있다.
몇해전 추석을 앞둔 명절 분위기를 취재하기 위해 전통시장 떡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떡집 주인장은 명절이 다가오면 예전엔 떡 주문표로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랄 정도였지만 이젠 떡 주문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밥줄 끊길까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떡집은 명절이 대목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떡 먹을 자식, 손주들이 안 오는 데 누가 반말, 한말씩 떡을 맞추겠냐며 하소연했다.
자기 입에 들어가는 것은 아까워도 자식 입에 넣는 것은 빚을 내서라도 먹이고 싶은 게 부모 마음 아닌가.
자식들은 혼추석을 즐길 수 있어도 부모는 혼추석이 두렵다. 자식들은 혼자 밥먹으며 행복을 느끼지만 부모는 혼자 밥 먹는 것이 모래알 씹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더구나 올해는 6개월이 넘는 의료 공백 사태 탓에 추석 응급실 대란이 예고되면서 명절 연휴 기간 아프면 어쩌나하는 불안감까지 엄습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속이 시끄럽다.
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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