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싸움
  • 정명숙 청주문인협회 회장
  • 승인 2024.09.11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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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텃밭은 조용한 전쟁터다.

각기 다른 풀들은 영역을 넓히느라 분주하고 벌레들은 가시를 세워 독을 품고 맹렬하게 채소와 풀잎을 갉아 먹는다.

새들은 그 벌레들을 쉴 새 없이 잡아먹고 있다. 필요 이상을 탐하지 않아서인가. 아비규환의 절규나 포성은 들리지 않는다.

마당 끝에 붙어있는 삼백여 평의 밭은 종다리가 새끼를 쳐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잡풀로 우거져 있다.

어쩌다 보이는 오이나 호박을 따려면 장화 신고 억세진 풀을 헤치고 가야 한다.

구월을 넘어서면서 더 이상 자라지 않는 풀이지만 밭은 이미 그들의 영토로 점령되었다. 뿌리로 흙을 옹골지게 움켜 지고 씨앗을 잔뜩 품고 있는 당당한 모습은 위협적이어서 내년 농사를 걱정스럽게 한다.

자연스러운 생명의 순환을 어찌 나무랄 수 있겠는가.

모든 생명은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는 강인함이 있고 쉽게 사라지는 연약함도 있으나 나는 한 번도 풀과의 전쟁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 맨몸으로 버티는 잡초에는 호미라는 무기를 들고 무력을 사용해도 소용이 없다.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 터다. 나도 싸움을 싫어한다.

때로는 부당한 일을 겪어도 따지고 싶지 않아 그냥 덮을 때가 많다.

긍정적이거나 생각이 깊어 이해심이 많은 것도 아니다.

내 진심을 알아줄 때를 기다리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냥 무시해 버린다.

그러나 상대의 약점을 잡고 작정하고 덤비는 사람은 피한다고 피해지지 않는다.

무력을 사용한다면 개인 간에도 전쟁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추석을 앞두고 배추와 총각무를 샀다.

된더위로 배춧값은 금값이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불볕더위에 귀한 배추가 혹시라도 상할까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동네 입구 도로 한가운데에 승용차 한 대가 시동을 꺼 놓은 채 길을 막고 있다. 차주는 길옆에 사는 집주인이다.

또 무슨 일로 심사가 꼬인 건가. 길을 막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차를 빼달라고 정중하게 전화할까 했지만, 순간 화가 났다.

나도 모르게 격하게 클랙슨을 마구 눌렀다.

다수의 동네 주민은 조용한데 유별나게 이 집에서만 텃세를 심하게 부리는 게 그동안 몹시 거슬리기도 했다. 주인 여자가 나왔다.

이곳 전원주택단지에 집을 짓고 이사 온 지 3년이 되었다.

그동안 수 없이 시달림을 받았다. 우리 집만 아니라 이곳에 정착하려 집을 짓는 사람마다 트집을 잡고 길을 막았다.

다양한 이유로 억지를 쓰고 싸움 끝에는 결국 습관처럼 돈을 요구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민원을 제기하던 사람이다.

부당한 줄 알면서도 외지인이어서 참을 수밖에 없었으나 이젠 한계가 넘어섰다.

오늘은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정원에 심을 잔디를 실은 차가 다닌다는 이유로 모든 출입을 막았다. 결국 경찰차가 출동하고 나서야 수그러드는 여자는 도망치듯 집 안으로 들어간다.

비열한 싸움을 걸어 그동안 남편 모르게 받아 간 거액의 돈이 이번 싸움으로 발각되었다. 화를 참지 못하고 펄펄 뛰는 그 여자의 남편이 말한다. “앞으로 이런 일 없을 터니 걱정마세요. 미안합니다.” 과한 욕심이 화를 불렀다.

기세등등하던 풀도 기세가 꺾이기 시작한다. 머지않아 텃밭에서의 전쟁도 멈출 터, 고성이 오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싸움도 이젠 그만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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