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주변에는 도서관이 많다. 마을마다 도서관이 있고, 우리 집 주변에도 금빛도서관, `집 앞 작은 도서관'을 표방하는 해품터 도서관도 있다. 하지만, 30년 전 고등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과 도서관에서 보자고 하면 지금은 교육도서관으로 불리는 사직동 언덕 위에 있는 중앙도서관에서 만났다. 정류장에서 내리면 도서관으로 가는 여러 길 중에서, 어떤 길로 가더라도 언덕을 올라야만 했다. 거리는 가깝지만 경사가 심한 충혼탑 옆길과, 거리는 멀지만 경사가 완만하고 상수리나무 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을 보며 올라가는 길 중 어디를 선택해도 땀이 흐르고 숨이 차오르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기까지 힘들게 왔으니, 오늘 하루 열심히 하자.'라며 의지를 불태우곤 했다. 물론 도서관에서 책만 읽고, 공부만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열람실에 앉아 공부할 때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던 바람이 좋았고,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해 친구와 작게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커져 버린 목소리에 당황했던 일, 식당에서 밥을 먹고 쉬는 시간에 이야기를 나누며 웃던 일들이 생각났다.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도서관에 가는 이유는 책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신경림 시인의 책을 읽으며 시인이 되기를 꿈꾸었고,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토지'를 읽으며 멋진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나도 얼른 껍질을 깨고 나와 세상을 향해 멋지게 날아오르길 원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도서관에 자주 다녔다. 도서관에 행사가 있으면 신청하고, 행사가 없어도 그냥 가서 책을 읽다가 오기도 했다. 또 시간 맞춰 가면 고등학생 형?누나들이 읽어주는 동화를 들으며 잠시나마 나만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었다. 우리 집에는 도서관에서 활동했던 즐거운 추억과 기념품이 있다. 벚꽃 밑에서 책을 읽는 사진을 찍고 기념으로 받았던 개구리 모양 연필 한 자루, 독서 마라톤을 완주해서 받았던 목에 거는 선풍기와 완주 메달, 그리고 글쓰기 과정에서 만들었던 문집까지….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최덕규 작가의 `여름이네 병아리 부화일기'를 읽고 유정란을 구입하여 병아리를 부화시켜 부자가 되기를 꿈꾸었고, 이분희 작가의 `한밤중 달빛식당'을 읽고 나쁜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아버지와 연우가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어려움을 서로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부분에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문제의 본질과 가족의 소중함을 알고 있다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어렵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와의 도서관 나들이의 좋은 점은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책 속에서 누가 이랬더라. 저랬더라.” 라며 작은 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다보면, 다 아는 내용이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우리의 추억이 있는 교육도서관은 리모델링 공사로 일시적으로 이전하였다. 옮겨간 곳은 여러 이유로 방문하지 못하다가 특강을 신청하여 오랜만에 도서관 가는 길은 기대감으로 가슴이 뛰었다.
도서관 프로그램 중 함께 책을 읽고 온라인으로 감상을 이야기하는 `온라인 북클럽'이 있다.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격언처럼 혼자 책을 읽고 생각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느낀 점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을 이해하고, 다양한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살게 하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은 인물을 만나게 하며,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 주는 책. 혼자 또는 아이와 함께 하는 도서관 나들이, 도서관 가는 길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