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 `글로벌청소년리더센터'가 준공됐다. 무려 429억원이 투입된 이 건물은 지난해 8월 이곳에서 개최됐던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에 사용할 계획이었다.
행사 용도로 지은 건물이 행사가 끝난지 10개월만에 완공된 것이다. 투자 목적을 전혀 충족하지 못했으니 이런 예산 낭비도 없다는 비판에 휩싸인 것은 당연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잡초 무성한 벌판 한가운데 덩그러니 들어선 이 시설이 예산만 잡아먹는 하마가 될 공산이 높다는 사실이다. 전북도는 건물 용처를 놓고 골머리를 앓고있다. 건물 관리에만 연간 최소 23억원이 들어간다고 하니 묘책이 강구되지 않으면 장기간 지자체의 재정에 부담을 줄 혹이 될 것이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이런 혹이 전국에서 수천개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다. 크기와 부작용의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지자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일종의 암세포들이 자가증식 하듯 늘어가고 있다. 레저단지. 테마파크, 체험센터, 연수원 등 관광·문화시설이 태반이다. 한국공공자치연구원이 연전에 전국 공공시설의 88%가 적자 운영 중이라는 조사자료를 냈다. 공공시설이 갖는 공익성을 감안하더라도 예사로 볼 수치가 아니다.
출렁다리 얘기를 해보자. 전국에 건설된 출렁다리가 238개에 달한다고 한다. 지자체 수보다도 많으니 2개 이상 가진 지자체도 적지않다는 얘기다. 초기에 등장한 출렁다리들이 관광객 유치에 효과를 내자 지자체들이 앞다퉈 건설에 나선 결과다. 가는 곳마다 눈에 띄는 출렁다리에 관광객들이 식상해지는 건 당연하다. 대부분 시설이 관리비만 잡아먹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그런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지자체들 탓에 출렁다리는 늘어가고 있다.
박물관은 전국에 20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문을 닫거나 방문객이 없어 먼지만 날리는 박물관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인건비와 시설 유지비 등 관리비용은 꼬박꼬박 들어가고 시설이 낡아지며 늘어간다.
잡다한 공모사업을 추진하며 지자체 간 사업 경쟁을 부추기는 중앙정부도 반성해야 한다. 전북 군산시는 지난 2019년 장자도 해상낚시공원을 준공했다. 해양레저를 통해 관광산업을 활성화하고 어업인 소득도 늘리겠다며 정부 공모에 도전해 뽑힌 사업이다. 지원받은 국비 25억6000만원 등 32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운영을 맡기로 한 어업단체가 수익성이 없다며 손을 뗀후 수년째 훙물로 방치됐다. 고심해온 시는 최근 용도 폐지를 결정하고 어선 계류시설로 전용하기로 했다도 한다. 정부가 타당성을 인정하고 예산을 지원한 시설이 개장도 못한채 5년만에 폐기된 것이다. 지지체의 경제성 분석도 정부의 사업 심사도 졸속으로 치러졌음을 반증하는 이런 사례들은 숱하다.
실정이 이런데도 사업 실패에 책임을 지는 단체장이나 정책 입안자는 없다. 책임을 지지도 묻지도 않는 풍토가 혈세를 잡아먹는 시설을 양산하는 주범이다. 지자체가 비용·편익 분석자료를 왜곡해 경제성을 부풀린 후 사업을 강행한 사례들이 툭하면 감사원에 적발되지만 솜방망이 징계로 끝난다.
임기 중에 치적을 남기려는 단체장의 욕구를 견제하지 못하는 지방의회도 책임을 피해가기 어렵다. 전국에 뿌리내린 무수한 혹들은 의회의 심사와 승인을 거친 결과물이다. 책임져야 할 몫이 수행기관인 지자체 못지않다는 얘기다. 호기롭게 부당성을 외치다가도 집행기관의 설득에 말려 슬그머니 동조하는 이중적 행태는 이제 습관이 됐다.
기초 자치단체 절반이 소멸위험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상반기에만 10조원의 국가 세수 펑크가 났다. 지방에 나눠줄 교부세가 계속 줄어갈 것이란 얘기다. 복지에 재원을 쏟아부어야 할 노인들만의 도시가 됐을 때를 대비한 정교한 사업이 모색돼야 하는 이유이다. 적자시설을 늘려 미래 가용 예산을 갉아먹는 돌팔이 행정은 소멸을 앞당길 뿐이다. 정부의 지자체 공모사업도 적자시설 구조조정 같은 실속형 사업에 맞춰져야 한다.
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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