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온하다. 어머니 품처럼 따스한 온기다. 울진 망양정 너른 마루에 양팔을 쭉 펴고 대자로 눕는다. 덧없이 흐르던 시간도 고색창연한 기품에 멈춘 듯 고요하다. 한 무리의 여행객이 휩쓸 간 고즈넉한 정자는 적막강산이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숨소리를 고른다. 긴 서까래를 잇대어 놓은 겹처마가 화려하다. 날렵하게 한껏 치켜 올라간 처마 끝부터 오방색으로 채색된 단청이 눈앞에 쏟아진다. 햇살 받은 단청 아래 수평으로 띳장을 놓은 단아한 평난간이다. 망루에 우뚝 선 망양정에 누워 세상을 거꾸로 보는 상념은 끝없이 과거로 뒷걸음친다.
망양정 노송 숲에서 설핏설핏 나의 고장 괴산의 암서재가 어른거린다. 늦여름 그날의 추억을 들추어보는 내내 묘하게 설렌다.
먼발치 개울 건너에서 보아도 범상치 않은 정자다. 묵직한 카메라를 등에 짊어지고 바짓가랑이를 둥둥 걷어 올려 개울을 건너 송시열 선생의 암서재 앞에 선다. 절벽 위 너른 반석 위에 올라앉은 정자에 감복하여 거친 숨을 몰아쉰다. 암서재 뒤꼍 바위틈에 용틀임하듯 구불구불 휘어진 노송에 눈길이 멈춘다. 그 아래 맑은 물이 감돌며 층암절벽이 더할 수 없는 풍광을 자아낸다. 너른 바위에 부딪치며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만 산자락의 고요한 정적을 깨며 유유히 흐른다.
굳게 닫힌 일각문 옆을 돌아 깨금발 들어 안을 살핀다. 좌선을 한 선비의 송독이 담을 넘는 듯 해 두 눈을 감고 귀 기울여본다. 반석 위에 고졸한 백골집으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정자다. 긴 서까래를 잇대어 달아 낸 겹처마로 우아한 곡선미를 치켜 올려 하늘을 떠받들고 있다. 화려한 채색도 없는 백골집이 이리도 단아하고 아름다울 수가 그저 감동이다. 아마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신의를 지키던 선비의 성향에 더 고아하게 보였으리라. 마루 가장자리에 온돌방이 정겹다. 수많은 선비의 사연을 간직한 채 붉게 녹슨 온돌방의 문고리가 왜 이리 아프게 가슴을 후벼 파는 걸까. 어쩜 그 시대 나랏일에 고뇌하는 선비의 삶이 깃들어 있어 더 아리지 싶다.
분진이 허옇게 내려앉은 대청마루, 금방이라고 발자국을 꾹꾹 찍으며 “게 아무도 없소” 헛기침하며 호령할 것만 같다.
선비의 하얀 도포 자락이 휘날릴 것 같은 암서재, 마음은 벌써 대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쭈뼛쭈뼛 주변만 서성인다. 일각문 너머로 퇴색된 대청마루에 앉은 고매한 성인이 보인다. 그의 가르침을 받으며 학문에 정진하며 나라를 위해 고뇌하는 고결한 제자의 모습도 보인다. 햇볕으로 꽉 찬 대청마루 학문을 연구하고 수양하는 망양정이나 암서재의 선비정신이 엿보인다.
망루에서 바라보는 동해안 풍광이 관동팔경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 하여 조선 숙종이 망양정을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을 하사했다. 암서재 역시 너른 반석 위에 우뚝 선 모습이 관동팔경 중에 하나와 비할 바 없다. 단아한 수묵화를 닮은 암서재와 화려하게 채색된 수채화를 닮은 망양정이다. 상반된 두 곳의 겹처마를 음미한다. 망양정의 화려한 단청과 암서재의 고아한 백골집의 서까래를 톺아보며 한옥의 미와 얼과 혼이 담은 정자에 매료된다.
먼발치 동해안을 굽어보며 조선시대의 왕을 나열해 본다. 군주(君主)의 숨소리를 음미하는 내내 군주의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바람에 휘청거리는 잡초, 들녘 지천에 무더기로 가득한 들꽃, 우뚝 선 나무들도 제각기 그릇이 따로 있다고 했다. 혹여나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더라도 정녕 아파하지 않으리라.
아직 세상에는 내가 보지 못한 아름답고 진솔한 삶의 모습이 아직 남아있으니 말이다. 햇살이 기우는 망양정에 서서 후인에게 전하는 선인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生의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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