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책을 읽다 보면 여러 난관을 만난다.
그 중 가장 어려운 점은 그들이 책의 내용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특히 그들의 경험 범위를 벗어나는 주제를 다룰 때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특성화고 실습생의 이야기나 장애인의 목소리가 담긴 책을 읽으면서도 학생들은 단순한 동정심이나 상투적인 생각에 머물곤 한다.
이는 깊이 있는 이해와 공감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태도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타인의 삶을 섣불리 판단하고 이미 모든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배움의 길에서 멀어지게 된다.
몇 년 전, 나는 학교에서 김중미 작가의 `곁에 있다는 것'이라는 책으로 독서 활동을 진행했다.
이 책은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배경을 그대로 반영하여 빈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수업 준비를 위해 책을 읽었는데 한 구절이 내게 너무 어렵게 다가왔다.
“배를 곯지 않는다고 가난이 없어진 건 아니다.”
이 문장은 내가 가난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얕았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나는 이런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고, 대부분의 학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이 책의 메시지를 깊이 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고 나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가난이 무엇일까?”라고 물었다.
한 학생이 “돈이 없어서 밥을 굶는 거요”라고 대답했다.
마음속에서 팽팽한 끈이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나는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말했다.
“나와 너희는 가난을 모른다.” 이 솔직한 고백은 이어지는 활동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타인의 어려움에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집중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 경험을 통해 배움은 겸손하게 자신의 무지를 인정할 때 시작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더라도, 그것을 우리의 제한된 경험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가난을 모른다.”라고 인정했던 것처럼, 자신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자세가 더 깊은 이해와 공감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된다.
이러한 자세는 타인의 삶에 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책 속 세계를 각각의 삶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나아가 우리 사회를 이해와 공감의 장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어른으로서 나의 역할은 학생들에게 이런 겸손한 배움의 태도를 보여주고, 그들이 계속해서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학생들의 세계관 자체를 변화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겸손한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공동체는 더 깊고 넓은 이해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이것이 배움을 통한 개인의 성장이고, 우리 사회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