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플란트 수술을 마친 이튿날엔 상태를 점검하고 소독을 했다. 때마침 치과 공용 주차장 모퉁이에 있는 구두 수선방에 묵혀두었던 신발도 맡겼다. 병원 진료도 사회생활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날은 도랑치고 가재 잡았다는 기쁨에 살짝 들떴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낮잠을 한숨 청할까 헛갈렸다. 여름휴가를 맞아 삼식이가 된 입장에서 트림과 방귀만을 자화상으로 내밀 수만은 없었다. 폭염의 해가 넘어가려는 즈음, 오랜만에 동네 한 바퀴를 걸었다.
잠자리들이 그물망 같은 날개를 펼치고 여기저기 평화롭게 날았다. 길가 둔덕의 강아지풀은 속속들이 햇살을 품고 빛났다.
`멜로우(mellow)'라는 카페를 지나칠 때는 이름의 뜻이 궁금해졌다. 서정적인 태도가 아니면, 물리적인 맛 중의 하나로 해석될 듯했다. 들어가서 물어보고 싶었는데 참았다. 이어폰을 끼고 FM 라디오 방송을 듣던 중에 남쪽 바다 사량도(蛇梁島)의 해안 일주도로를 드라이브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인 순간도 있었다.
눈에 익은 개울을 따라 움직였는데, 지난번 폭우 때 징검다리는 물속으로 들어가서 아직 그대로였다. 덩치가 작은 참새들의 식량창고는 나무의 무성한 잎사귀들 사이에도 있었다. 누군가 반대편으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쳤는데, 아는 사람 같아서 몇 번을 뒤돌아보았다. 땀을 식혀주는 바람이 통과하는 다리 밑에서 만난 어느 아저씨의 눈썹이 하도 짙어서 나도 모르게 내 눈썹을 더듬거렸다. `나 잡아봐라' 놀이를 하면서 뒤쫓아오는 아이를 스마트폰 영상에 담느라 여념이 없던 젊은 아빠가 내 옆을 지나갔다. 아
이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나를 따라오다가 사라졌다.
걷기를 마칠 즈음이라 패션(fashion) 더하기로는 되려 늦은 감이 있었지만, 오른팔 손목에 팔찌처럼 손수건을 둘렀다. 산책로의 풀꽃 내음이 갑자기 너울처럼 몰려와 화들짝 놀랐다.
나른해진 몸을 일으켜 마실 가듯 동네를 거니는 것도 당신의 삶을 싹 틔우는 씨앗 한 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