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다. 마치 뜨거운 가마솥 안 옥수수가 된 것 같다. 또 비는 왜 이렇게 자주 오는지…. 그래도 비 온 뒤 목백일홍, 느티나무, 하늘의 구름까지도 자신만의 색깔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렇게 더울 때는 밖으로 나가기보다는 에어컨을 켜고, 시원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도 여름을 나는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자라나는 청소년이 있다. 이 청소년을 집에만 있도록 허락하는 것은 마치 홍길동에게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허(許)하듯 스마트폰의 세상에 머물도록 허락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능하면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만 한다는 강박이 들었다.
`어디로 갈까?' 생각하다 2년 전`여수 밤바다' 노래를 듣다가 숙박업체만 예약하고 아들과 함께 떠났던 즉흥 여행이 생각났다. 사실 사춘기가 시작된 아들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았겠지만 엄마가 걱정되니 마지못해 동행했을 것이다. 첫 번째 즉흥 여행지는 여수였다. 운전을 잘하지 못해 5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여수는 내가 노래로만 듣고 생각했던 바로 그 `여수'였다. 이순신광장에서 바다를 보고, 달콤한 딸기찹쌀떡과 겉은 바삭바삭하고 그 안은 고기와 채소로 채운 바게트버거도 먹었다. 아이와 함께 간 아쿠아리움에서는 벨루가와 물개의 재롱에 박수를 치며 웃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숙소로 오는 길에 반짝이는 해상 케이블카에 매료되었으나, 어두운 밤바다 위에서 케이블카 타는 것이 무서워 반짝이는 모습만 구경하다가 숙소로 돌아온 일도 기억났다. 아침 식사 후 여수 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해상 케이블카를 타고 오동도를 걸으면서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한 잎, 한 잎, 반짝이는 동백나무 잎과 푸른 하늘 아래로 햇살에 반사되어 일렁이는 바다, 그리고 풀밭 위에 누워 있는 고양이들을 보면서 이렇게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던 여행이었다.
두 번째 즉흥 여행지는 전주였다. 전주의 좋은 점은 여수보다 멀지 않아 당일 여행이 가능하고 역사가 깊어 볼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왜구를 토벌한 이성계가 전주 성 일대를 내려다보며 잔치를 벌였던 오목대를 시작으로 조선 1대 태조(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져 있는 경기전으로 가면 여러 왕의 어진을 볼 수 있는 어진박물관과 초록색의 나무들, 대나무가 청량하게 맞이해 준다. 경기전 앞에는 영화 `약속'에 나왔던 웅장하고 세련된 전동성당이 있는데 미사 시간과 겹쳐 실내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외부에서 성당 사진을 찍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이 한옥마을에는 맛있는 간식이 많다. 오징어 튀김, 문어 꼬치, 초코파이, 만두, 바게트, 그리고 육전까지. 식사도 전주비빔밥보다는 수란이 별도로 나오는 콩나물국, 칼국수, 물갈비가 맛있었다. 역사적으로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 데 맛까지 좋으니 여행지로 만족할 만했다. 무엇보다 고속도로 공사를 하면서 옮겨 심은 식물들로 공원을 조성한 한국도로공사 수목원과 연꽃이 예쁜 덕진공원은 멋진 사진 포인트가 많아 아들과 이 자세, 저 자세를 해보며 사진을 찍어 주변에 자랑한 일도 있었다.
다음 여행지를 정하며 지난 여행을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충주 미륵사지석탑을 보러 갈까?', `옥천 정지용 문학관을 갈까?' `박물관 특별전을 보러 가야하나?'
이제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다. 집에만 있고 싶은 아들을 데리고 나가 더운 곳을 다니는 것보다는 방학 동안만이라도 에어컨을 틀고, 뒹굴거리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즉흥 여행에서 얻은 정보도 스마트폰에서 찾은 정보이기 때문이다, “아들아, 너에게 호부호형을 허하노라.”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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