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책 대화 수업을 하고 있다. 수업 시간을 온전히 들여 교과서가 아닌 단행본 책을 꼼꼼히 읽고 이야깃거리를 정리한 후에 같은 책을 읽은 모둠 친구들과 함께 책 내용에 대해 대화하는 활동이다. 모둠 친구들과 함께해야 하는 수업 활동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뉜다.
교사 역시 긴 호흡의 활동을 지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이 수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이 어려움이 언젠가 학생들을 성장하게 하는 밑거름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활동을 진행할 때였다. 학생들은 자신이 선택한 책을 읽고 책을 통해 삶을 성찰하는 서평을 A4용지 5쪽 정도 써야 한다. 학생의 초안을 검토할 때였다. 방현석 작가의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를 읽은 학생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책은 영화 `남영동 1985'의 모티브가 된 민주화 운동의 대표적 인물인 고 김근태 님의 생애를 소설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녀석이 서평의 결론에 자신은 김근태처럼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며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써 놓았다. 학생의 글을 첨삭하다가 생각에 잠겼다. `내 수업의 목표가 학생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을까?'
그 학생에게 넌지시 선생님은 이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고 피드백했다. 그랬더니 똘똘한 녀석이 귀신같이 내가 좋아할 만한 결론으로 수정해서 다음 날 제출했다. 수정본을 받아 읽으며 더 절망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 녀석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벽처럼 다가왔다. 수업 시간에 이런 내 마음을 친구들 앞에서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내 말을 들은 학생 중 하나가 툭 `이기적인 XX'라고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글을 쓴 녀석이 사실 솔직한 마음은 처음 썼던 글이라면서 아직 그 글에 쓴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순간 둘이 가볍게 언쟁 비슷한 장면이 만들어졌다.
그 순간 느낀 통찰이 지금까지 내 수업의 동력이 되었다.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점수가 걸린 수행평가에서 교사의 말은 `어른의 교과서적인 뻔하고 옳은 말'의 범위를 넘어서기 어렵다. 겉으로는 교사의 말을 수용하는 것 같지만 이미 형성되어 있는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바꾸는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같은 말이라도 친구의 말은 학생의 생각에 더 쉽게 균열을 줄 수 있음을 알았다. 교사의 말을 뻔한 옳은 말로 치부해 버리고 마는 것과 달리 학생들 사이의 생각 교환이 일어날 때는 `나는 틀리지 않았다.'라는 일종의 자존심이 그들 사이에 작용하면서 가치관이 충돌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교사마다 추구하는 목표와 연출하고 싶은 수업 장면이 다르겠지만 나는 학생들의 가치관이 부딪치며 다름을 알아가고 인정하며 공동체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수업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배움은 일방적으로 어떠한 입장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배움은 이론과 공식을 외우거나 문제를 푸는 활동 너머에 있다. 어른의 역할은 학생이 서로의 관점을 존중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단순히`옳은 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하는 법을 아는 것이야말로 배움이 일어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