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연꽃을 그리는 중이다. 선이 모여 꽃잎의 여백이 채워지고, 여백을 채운 꽃잎들이 모여 분홍연꽃 한 송이가 화폭에 피어났다.
이쯤에서 손을 멈춰야 했을까. 청록색 넓은 잎을 색칠하려는데 만만치가 않다.
처음에는 꽃잎처럼 세밀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넓고 푸른 잎이라 수월하게 그려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이번 작품으로 연꽃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잎의 앞면은 진하고 흐르듯 부드럽게, 뒷면은 음영을 넣어 돌출된 잎맥을 세밀하게 표현해야 하는데, 소질도 재능도 없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색을 칠하고 지우고, 다시 색을 입히고를 반복하며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연잎을 덖을 때도 그랬다. 너무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다. 여린 꽃으로 차를 덖어야 할 때는 팬의 온도부터 온 신경을 써야 해서 혹시나 꽃잎이 탈까 노심초사하며 덖어야만 했다. 반면 잎이 두꺼운 재료들은 편할 줄 알았다.
언감생심이었다. 꽃잎보다 만지고 다루기는 편하지만, 풋내를 잡지 못하면 제대로 된 차 맛을 낼 수 없어 반드시 살청을 하고 유념을 반복해야 했다.
힘이 들기는 여린 꽃잎이나 두꺼운 잎이나 매한가지였다. 연잎은 호락호락 깊은 맛을 허락하지 않았다. 푸른 연잎을 펼쳐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짙은 청록색 앞면은 하늘을 담아낼 듯 넓고 푸르다. 잎맥이 도드라진 뒷면은 진흙탕 아래 대지의 기운을 품어 안은 느낌이 든다. 이런 나를 두고 지인은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했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연잎을 가만 들여다보시라. 나의 상상력에 공감할 수도 있으리라.
연은 뿌리부터 잎, 꽃과 씨앗까지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식물이다. 씨앗의 생명력 또한 대단하기로 유명해서 중국에서는 2천 년이 지난 씨앗이 발아된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함안에서도 7백 년 세월을 건너온 연꽃 씨앗이 발견되어 발아에 성공해 꽃을 피웠다.
`아라홍련'이라는 아름다운 이름도 얻었다. 나도 내년에는 함안으로 아라홍련을 만나러 가보리라.
차를 우린다.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온 연잎은 아니지만 노란색을 머금은 연둣빛으로 우러나는 탕 색은 품위가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연꽃차보다 연잎 차를 선호해 평소에도 즐겨 마신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연꽃은 잎 차에도 여러 가지 좋은 성분들을 함유하고 있어 건강음료로 가치도 매우 뛰어나다.
커피가 대세인 세상이지만 가끔 자극적인 음료가 아닌 덖은 연잎 차를 음미해보시라. 처음에는 별로일 수도 있다 생각될 수도 있지만, 한 번 두 번 마시다 보면 입맛을 자극하는 그 어떤 음료보다 입안에 감도는 깊은 향과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건강에 도움이 되는 차로 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차이기도 하다.
바쁘고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이다. 차를 우려 마시는 과정이 다소 불편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차를 다관에 넣고 우러나는 시간, 찻잔에 따라 마시며 음미하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잠시 기다리는 그 순간이 긴장된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주고 잠깐이라도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귀한 경험이 되어 줄 것이다.
차를 마시며 그림을 바라본다. 한 달 만에 색칠이 끝났다. `보타니컬아트'를 시작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갈수록 점점 어렵게 느껴진다.
이번 연꽃은 연잎 차를 처음 덖을 때처럼 유난히 더디고 어려웠다. 매우 부족한 그림이지만 연잎 줄기 끝에 `이연'이라고 이름을 적으며, 나는 왜 필명을 `이연'이라 지었는지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