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전참묘3
남전참묘3
  • 무각 스님 괴산 채운암 주지
  • 승인 2024.07.18 17: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스님 괴산 채운암 주지
무각 스님 괴산 채운암 주지

 

구름 걷힌 하늘 달이 못에 도장을 찍었네.
그지없는 물에 비친 달빛을 누구에게 말해줄까?
하늘과 땅을 물어 막힘없는 눈을 뜨면
큰 도는 분명하여 참구할 필요 없네.

반갑습니다. 이제 괴산 화양구곡의 아름다운 천년고찰 채운암 주지로 상주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에 탁마할 공안은 단도직입형 공안인 무문관 제14칙 남전참묘(南泉斬猫 )3.입니다.

이 번에는 남전참묘의 두 번째 국면으로 이 두 번째 장면 바로 이 일이 있은 후 조주 선사가 외출을 갔다 돌아오는 장면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남전 선사는 조주 선사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해주는데 이 때 조주 선사는 대뜸 신발을 머리위에 올리고 나가 버리는 기행을 선보입니다. 그걸 본 남전 선사는 “만일 조주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고양이를 구할 도 있었을 텐데…”라고 했지요.

첫 번째 국면에서 남전 선사가 수행승들의 집착을 꾸짖은 것이라면, 두 번째 국면에는 그 질문의 성격이 살짝 바뀌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남전 선사가 말한 “만약 그대들이 한마디 답을 할 수 있다면 고양이를 살려 줄 테지만”이라는 이 말을 좀 더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는데요.

남전 선사는 도대체가 무슨 말을 하라는 뜻일까요? 이 질문이 만약 자신들의 집착에 대한 일침이라면 거기에 대고 경전의 이런저런 논변이나 고사들을 갖다 붙여서 설명해볼 수도 있었겠지요.

얼른 생각하기에도 고양이를 죽게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무슨 말이라도 하는 게 맞는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순간에 이미 수행승들은 이미 깨닫고 싶다는 욕망에 집착하고 있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되니까요.

지금 이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떠오르는 그 어떤 말도 단지 선대로부터 내려 오는 어떤 권위에 대한 인용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이것 또한 그 어떤 것도 막힘[득(碍)]이 없고, 무장무애(無障無◇)와 스스로 존재한다는 자유자재를 이상적 경지로 보는 선가(禪家)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치명적인 어리석음 이라는 말이지요.

그럼 여기서 마치고 다음 시간에는 무문관 제14칙 남전참묘(南泉斬猫) 4.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여기 무각스님과 함께하는 무문관 공안으로 보는 종횡무진 자유로은 선(禪)과 함께하는 모든 분들이 부디 행복하시고 여일하시길 두 손 모아 기원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