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위독한 상태로 우리한테 왔다가 죽은 거예요?”
누군가 시내버스 안에서 큰 소리로 통화 중이다.
사람의 생명과 관련한 일을 하는 사람인가 보다. 그러니까 의사나 간호사, 요양보호사 등이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탓인지 자신의 목소리를 가늠하지 못하는 듯했다.
다소 불편한 내용의 통화를 오랫동안 들어야 했다.
돌아다 보니 그는 송화기 부분을 입에 대고 마치 마이크에 말을 하듯 통화 중이었다. 눈을 감는 것처럼 귀도 닫을 수 있다면, 정말 닫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며칠 전에도 내가 탄 시내버스에 큰 소리로 통화하는 남자가 탔다. 물론 처음에는 시끄러워서 귀를 막고 싶었다.
그런데 지역의 기업인 이름이 나오고, 그가 사주인 언론사 이름도 나왔다. 자신이 취업한 회사에 대한 장황한 정보를 늘어놓고 있었다. 건너편에 앉아있었는데 그의 뒷자리가 빈 뒤로는 아예 자리를 옮겨 앉아서 귀를 기울여 들었다.
주재기자 제도의 운용과 자신의 급여, 법인카드 사용 권한 등에 대한 비밀스러운 정보가 공개되고 있었다.
차마 여기에 옮길 수 없는 내용도 적잖았다.
그는 목적지에 내릴 때까지 전화를 끊지 않았다. 나는 한 정거장이 더 남아있었지만 따라 내려서 그의 얼굴을 기억해 두었다.
호기심도 많을뿐더러 29년 기자 생활의 근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자로 산다.
두 사건 모두 최근의 일이다. 10여 년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봉인했던 사건의 비밀을 지금 해제한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는 길이었다. 차에 탄 사람은 운전기사를 빼고 서너 명뿐이었다.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지정된 좌석에 앉자마자 눈을 붙이려 했다. 그런데 앞자리에 앉은 중년여성이 이내 통화를 시작했다.
통화하는 목소리가 커서 수면을 방해할 정도였다.
잠들지 못해 뒤척이다가 자리를 옮길까 고민하는데 “충청도가 다 그렇지 뭐”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러더니 주절주절 거친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기획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각 작품이 파손된 일이며, 운반과 설치 과정에 보험을 제대로 들지 않은 과실과 보상 문제에 관한 얘기였다.
이 통화도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메모하지 않았지만 당장 기사를 써도 될 만큼 내용이 머릿속에 정리됐다.
당시 편집국장(직무대행)이었던 나는 문화를 담당하는 기자에게 이 내용을 귀띔했다.
본격적인 취재가 이뤄지자 그 기획전시의 큐레이터가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세 사람뿐인데 누가 비밀을 발설했느냐”며 `격노'했다는 말이 들려왔다.
나에게 `흥미롭지만 장황한 이야기'를 1시간30분 동안이나 들려준 이가 그 큐레이터였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그 미술관 관장의 배우자가 회사에 찾아왔다든가, 신문사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서 `기사를 빼달라'고 간청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관장의 배우자는 청주의 꽤 유명한 기업인이다. 애초부터 꼭 기사를 쓰자고 시작한 취재도 아니었고, 반드시 보도해야 할 공익적 가치도 크지 않다고 판단해서 보도하지 않았다. 물론 기자와 충분히 상의했고, 어떤 거래도 하지 않았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라는 옛말이 있다. 누가 들을지 모르니 `입조심'하라는 얘기다. 나는 대중교통 안에서 전화를 걸지 않고 웬만하면 받지도 않는다. 문자로 통화를 거절하거나 전화를 잠시 받아서 몇 분 뒤에 전화하겠다고 일러주고 바로 끊는다.
혹여라도 통화를 하게 되면 손으로 입과 송화기 부분을 가리고 소곤소곤, 용건만 짧게 얘기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들을까도 염려되지만, 그보다 지키기에 어렵지 않은 공중도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