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국민동의청원은 2020년부터 운영됐다. 국민이 국정 운영에 대해 의견을 제기할 수 있는 창구를 늘려 참정권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억울한 피해의 구제, 공무원 징계 요구, 법률 제·개정 및 폐지 등을 요구할 수 있다. 30일 안에 5만명 이상 동의를 얻으면 소관 상임위가 청원 내용을 심사해 본회의 회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지난달 20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 발의룰 요청하는 청원이 등록됐다. 청원 사유에는 대통령의 채 상병 사고 수사외압 논란,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및 주가조작 의혹 등 5건이 포함됐다. 사흘 만에 5만명이 이 청원에 동참해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회부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반대했지만 민주당 등 야당은 법사위 청원심사소위를 열고 오는 19일과 26일 이틀간 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채택한 증인 39명에는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와 장모도 포함됐다.
국민동의청원은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 접수된 청원이 5만명 동참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고, `감사·수사·재판·행정심판·조정·중재 등의 절차가 진행 중인' 청원은 수리해선 안된다는 청원법에 걸리는 사안도 허다했다. 무엇보다 의원들의 무관심과 태만이 결정적이었다. 지난 21대 국회만 해도 천문학적 치료비용에 고통받는 희소병 환자 가족들의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청원 등 100건이 넘는 국민청원이 접수됐지만 처리가 미뤄지다 대부분 자동 폐기됐다. 국민청원을 다루는 청문회도 이번에 처음 열린다. 잠자던 청원법이 하필이면 이번 대통령 탄핵 청원을 계기로 눈을 뜬 셈이다.
민주당이 법사위를 통해 탄핵소추 의견을 단 권고안을 본회의에 보내 실제로 대통령 탄핵에 시동을 걸지는 미지수다. 그리 될 결우 국회는 사생결단의 대립과 정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표류할 게 분명하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신뢰를 잃고 대통령과 주변에서 사실 규명이 필요한 의혹들이 제기된 것도 부인못할 사실이다. 하지만 청원 사유들이 국론 분열로 국정이 좌초하고 진영·정파가 극한 대립하는 혼돈을 무릎쓰고라도 대통령을 중도 퇴진시켜야할 중차대한 사안이냐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수사 중이거나 국정 책임자의 선택권도 인정해야 할 정책적 사안들이 사유로 제기됐기 때문에 청원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당은 이재명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과 위증교사 재판 결심공판을 앞둔 민주당이 탄핵정국을 조성해 여론을 돌려보려는 술수일 뿐이라고 반격한다. 탄핵 시도가 또 다른 풍파를 불러올 소지도 있다는 말이다.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에서도 문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청원이 제기돼 총 146만9023명이 동의했다. 130만명을 넘겼다는 지금보다 동참 열기가 뜨거웠다. 이때의 청원은 국회가 아니라 청와대가 운영하던 `국민청원'을 통해 제기됐다. 접수된 국민청원이 30일 이내에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공식 답변을 한다는 게 당시 청와대의 방침이었다. 에에 따라 청와대는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하면 헌법재판소가 탄핵의 당부를 결정한다'는 헌법 65조를 제시하며 “탄핵 절차는 국회의 권한이라 답변이 어려우니 국민 여러분의 양해를 구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를 구실로 국회에서 법사위가 열리지도 않았고 야당이 청문회를 열자며 대들지도 않았다.
헌법 84조가 내란·외환에 준하는 헌법·법률 위반 정황이 분명해야 대통령을 탄핵소추할 수 있다고 규정한 이유는 자명하다. 대통령이 범접불가의 절대적 존재인 나라가 돼서도 안되지만 대통령 탄핵소추가 바둑판에 돌 놓듯이 가벼이 다뤄지는 나라가 돼서도 안된다는 의미일 터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지난 총선 압승에는 탄핵을 바라는 민심이 반영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은 여권의 총체적 지리멸렬에도 불구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에 쫓기거나 키재기에 급급하다. 대통령 탄핵이 차가워진 민심을 돌려세울 처방전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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