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여행 선물로 딸아이는 패딩턴 인형을 사다 달라고 했다. 패딩턴이라니….
다섯 살도 아니고 스물 다섯도 훌쩍 넘긴 아이의 요구라 웃어 넘겼다. 여행 중 잊고 있던 그 패딩턴을 런던에서 파리로 가는 유로스타 역에서 만났다.
열차 출발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고, 국경을 넘는 이동이다 보니 짐 검사에 절차도 복잡했다. 그냥 지나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이미 발걸음은 기념품 가게로… 어느새 크기도 다양한 패딩턴들이 양손 가득이다.
빨간 페도라에 떡볶이 단추가 달린 파란 더플 코트, 패딩턴 브라운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갈색 털의 곰, 언제나 들고 다니는 작은 가죽 케이스, 런던의 이름모를 탐험가를 찾아 페루 깊은 숲 속에서 온 말하는 곰 패딩턴, 숙모 루시의 교육 덕분에 그는 모두에게 친절하고 각 사람 속의 장점을 찾아내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 덕분에 가족은 각자의 위치를 찾고 마을 사람들 역시 생기있고 밝은 생활을 하게 된다.
이 특별한 곰은 아이들의 동화나 영화 속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2022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재위 70주년 파티인`플래티넘 주빌리(Platinum Jubilee)' 영상에 패딩턴이 등장했다. 패딩턴의 빨간 모자 속에는 비상용으로 먹을 마멀레이드 샌드위치가 늘 숨겨져 있는데, 여왕님과의 찻자리를 망친 패딩턴이 비상용 마멀레이드 샌드위치를 꺼내자 여왕님도 장난 가득한 얼굴로 여왕님의 아이콘 검정 핸드백을 열어 보여준다. “나도 하나 넣고 있지. 여기!”
여왕님 재위 70주년 기념 파티에서 독대한 대상이 곰, 그것도 패딩턴 베어라니. 곰 패딩턴은 1958년 영국 작가 마이클 본드의 책 `내 이름은 패딩턴'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1956년 마이클 본드는 아내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곰 인형을 샀고 가족과 함께 살았던 패딩턴 역 근처를 추억하면서 곰의 이름을 `패딩턴'이라 불렀다.
베스트셀러가 된 패딩턴 이야기는 1975년 영국에서 56부작 시리즈로 TV에서 방영되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패딩턴 1, 2를 통해 영화로 전 세계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 속 말하는 곰 패딩턴은 처음에는 모두에게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지만, 서서히 가족이 되어가고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간다.
페루의 숲 속에서 온 패딩턴에게 런던이 낯설 듯, 런던에 사는 사람들에겐 패딩턴이 낯설다.
사실 모든 사람들은 서로 다르고, 다르다는 것은 그 차이를 존중하며 맞춰가야 함을 의미한다. 패딩턴이 브라운 가족의 일원으로, 런던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아가는 것은 그 과정을 보여주는 여실한 예다.
그 과정에서 주목할 것 한 가지, 작은 친절의 힘! 브라운 부인 메리는 날이 어두워가는 패딩턴 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작은 곰 한 마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페루에서 루시 숙모가 걸어준 목걸이에는 `Please look after this bear. Thank you.'라는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그 글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말을 걸고,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 메리, 그런 작은 친절은 패딩턴의 삶은 물론 브라운 가족의 삶도 바꾸었다.
비 오는 공원을 산책하다 보면 많은 지렁이가 산책로에 올라온다. 피부로 호흡하는 지렁이는 땅에 물이 가득하면 더 많은 산소를 얻기 위해 지면으로 나온다.
그러나 사람이 오가는 길에 지렁이는 밟혀 죽기 십상. 그런 지렁이를 풀숲으로 옮겨주는 것, 그것도 작은 친절이다. 노인의 무거운 리어커를 뒤에서 살짝 밀어주는 것, 아이에게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 더위에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물 한 잔을 내미는 것 등등 2024년 우리나라에도 패딩턴이 필요하다.
어쩌면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에게는 `이 생명체를 돌봐 주세요. 감사해요'라는 신의 메시지가 걸려있는지도 모르겠다. 패딩턴 역의 그 말하는 곰에게 걸려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