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 목걸이
자개 목걸이
  • 정정옥 수필가
  • 승인 2024.06.24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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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정옥 수필가
정정옥 수필가

 

까맣게 잊고 지내던 것을 우연찮게 마주했을 때 그 미묘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지 참 난감할 때가 있다.

병원 진료를 마치고 차 시간이 많이 남아서 딱히 살 것이 없음에도 강남 지하상가에 갔다.

여기저기 눈요기를 하며 무심히 걷던 중에 어느 장신구 가게 앞에서 아, 하는 탄성이 새어 나왔다.

분홍빛과 푸른빛이 섞여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야광패로 만든 네 잎 클로버 모양의 목걸이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자개기술자였던 아버지가 실톱으로 모양을 자르고 센드페이퍼로 다듬어서 실에 꿰어 걸어준 목걸이와 너무나 흡사했다. 애지중지했지만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오랜 기억 속의 물건이었다.

그 가게에는 야광패뿐만 아니라 진주패, 청패, 홍패, 민물패 등으로 만든 목걸이, 반지, 머리핀, 브로찌, 팔찌 등등의 액세서리들이 저마다 휘황한 광채를 내며 전시되어 있었다.

자개의 영롱한 빛을 보는 순간 생전의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가게 안의 액세서리를 다 사기라도 할 것처럼 한참을 보고 또 보고하였다.

자개는 조개껍데기를 갈아서 만든다. 전복껍데기에서는 청패, 소라껍데기에서는 야광패, 진주조개에서는 진주패, 민물조개에서는 민물패가 나온다.

자개는 삼국시대에 중국 당나라에서 전해졌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전감, 함방, 취라, 나전이라 불렸으며 한국에서는 자개라고 하였는데 나전칠기라는 말은 중국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경대, 소반, 문갑, 보석함 등이 오늘날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는 고려나전의 명품들이다.

나전칠기는 옻칠을 하는 것이 정통 방식이다.

옻칠은 접착성, 방부성, 방수성, 살균성 등 그 어떤 화학적인 도료를 합성해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완벽한 천연도료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개에 옻칠을 더하면 천년이 넘도록 그 영롱한 빛깔을 잃지 않고 도도히 빛나는 것이리라.

아버지가 자개 일을 하셨을 때는 작은 액세서리를 만드는 일은 하지 않으셨다. 장롱, 화장대, 찬장, 교자상 등 세간을 만드는데 필요한 자개 일만 하셨다. 클로버 목걸이는 어린 외동딸이 예뻐서 특별히 만들어 주셨을게다.

한때는 밤에도 일을 해야 할 만큼 아버지의 자개 공장은 바빴다.

하지만 값비싼 자개로 만든 가구 대신 값이 저렴한 다양한 재질의 가구들이 유행을 하면서 아버지의 자개 공장은 시나브로 쇠퇴하였다.

자개 공장에서 일을 배우던 언니 오빠들도 다 떠나고 아버지의 일상도 휑뎅그렁 쓸쓸해져만 갔다. 늦가을 바짝 마른 낙엽들이 스산한 바람에 뒹구는 것처럼.

아버지도 정통 가구만 고집하지 말고 액세서리나 소품 등을 만들면서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냈으면 어땠을까?

우리 사 남매 중에 누구라도 아버지의 가업을 이었더라면 아버지의 허한 일상이 조금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밥벌이가 충족되지 않더라도 소일거리 삼아서 붙잡고 있었더라면?

요즈음은 형편들이 나아져서 자개로 만든 소품들을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던데….

옛날 장롱을 리폼하여 멋진 식탁을 만들기도 한다던데….

그 정교한 솜씨를 어쩌자고 그렇게 일찍 버리고 가셨을까.

차를 타고 오는 내내 부질없는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늘도 내 기분을 맞추는지 매지구름이 낮게 내려앉고, 그 옛날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목걸이와 비슷한 야광패 네 잎 클로버를 속절없이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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