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전학 갔던 학교에서 처음 발표하고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던 바랜 기억부터 아마 영원히 못 잊을 웨딩드레스를 입고 하객들 앞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던 날까지. 가끔은 걱정된다 싶을 정도로 기억력이 나빠서 어제 점심으로 먹었던 식사 메뉴는 물론이요, 단 며칠이라도 같이 웃고 얘기했던 사람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답답한 일상 속에서 이렇게 남아있는 기억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귀하고 귀했던 삶의 일부를 곱게 접어 꽤 오래도록 기억할 추억으로 남기려 한다.
첫 시작을 되돌아보니 벌써 3년6개월 전이다. 새로운 근무지로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낯설었던 그때, 무슨 용기로 한 달에 한 번도 아닌 한 달에 두 번씩 글을 써내겠다고 결심을 했는지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래도 그때는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 가득했었다. 그래서 한동안 다음 글은 어떤 주제로 쓸까 하며 고민했던 시간이 꽤 즐겁기까지 했다. 하지만 인생은 늘 그렇듯 권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권태는 2주라는 시간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길지 않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었다.
언제부턴가 시작된 이제는 그만 써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해가기 시작했고, 생각은 행동이 되어 마감을 한 시간 앞두고 글을 보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수개월을 멈추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건 잊을 만하면 들리는 격려의 말들 덕분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세상의 이치처럼 이면에는 내가 대답을 할 수 없는 질문들도 종종 받아왔지만, 사람은 본능적으로 내가 좋은 쪽으로 기울게끔 설계되었는지 그런 질문들은 일상에서 지워진 수많은 기억처럼 사라지고 듣고 싶은 말들만 마음에 남았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고민했었다. 이제껏 해왔는데 더 쓸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바빠도 2주에 단 몇 시간 자판 두드릴 시간이 없을까. 하지만 곧 마음을 접었다. 내 앞에 열릴 새로운 문의 무게에 벌써 짓눌려 전적으로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지금의 이 마음으로는 더 이상 쓰는 사람으로서의 뿌듯함, 즐거움을 느낄 수 없을 것 같은 직감 또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기에 맺음을 하려 한다.
너무 이르게 찾아온 무더위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힘든 나날들이 지속되고 있다. 어떻게든 선풍기 몇 대로 버티려 해도 이마에서 시작된 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 눈으로 들어가 고통스럽고 그것도 모자라 입속까지 침범해 불쾌한 짠맛을 일으킬 때면 하루에도 열두 번 에어컨 리모컨을 들어놨다 내려놓는 반복 행동을 멈출 수가 없다. 하지만 당장 다음 달부터 어떻게든 글을 쓰고자 모니터 앞에 앉아 세상을 탐색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틀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허전해져서 그런지 기세등등한 여름 더위도 살짝 덜 느껴지는 듯하다. 아쉽다는 말을 빙빙 돌려 하니 민망한 기분 역시 감출 수가 없다.
어느새 2024년도 상반기가 다 흘러갔다. 하반기는 상반기처럼 속수무책으로 흘려보낼 수 없어! 라고 다짐해도, 그 다짐하는 시간조차 그저 흘러가는 걸 막을 수 없는 게 인생이지만 그래도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무엇보다 나 자신이 잘 버텨내기라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