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가고 여름이 올 때면 나는 40년 전의 그때가 기억나곤 한다. 한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얘기 보따리를 늘어놓는 군복무 시절이다. 그때 나는 진로 문제 등을 이유로 남들보다 `늦깎이'입대를 했다. 한창 더운 7월 8일이었다. 다행히 고향이 해남인 이 모 고참병과 대구 모 대학 휴학후 입대한 2명의 탄약병이 있었기에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임무에 충실했던 그들에게 받은 깊은 인상은 직장 생활 중 힘들 때마다 나를 채근하는 잊을 수 없는 지침이 됐다. 특히 여름의 문턱에 들어설 때면 역설적으로 문학에 대한 소양이 얕은 내 삶 속에 과거의 추억이 소중한 문학적 감상으로 다가오곤 한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여러 답이 있겠지만 문학은 가치 있는 인생경험을 언어를 통해 예술적 아름다움을 추구함으로써 정신적 즐거움을 줄 뿐 아니라, 인생의 진실을 통해 삶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는 공리적 효용을 제공하고 있는 예술 장르가 아닌가 싶다. 특히 우리의 삶 속에서 이 같은 경험을 간직하게끔 하는 국내외 거장들의 유산이 있기에 우리의 삶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주요섭의 <사랑 손님과 어머니>는 전형적인 한국 여인의 내면적 사랑의 의미를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사랑 손님을 배웅하기 위해 뒷동산에 올라 말없이 바라보던 여인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시려온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그 전경을 시적으로 잘 표하고 있어 가슴 벅차다. 산허리에 피어나는 메밀꽃밭의 정경은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듯하며, 자기를 닮은 왼손잡이 동이를 보는 허생원의 눈빛에서는 친자를 확인하는 환희의 기쁨이 절절히 묻어남을 볼 수 있다. 수필의 대가 피천득의 <인연> 또한 우리에게 친숙하나 가슴 아픈 사연이다. 아사코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며 백합같이 시들어 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 한 그의 애잔한 여운은 지금도 가슴속에 잔잔히 흐른다. 그래서 그는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며 청초한 여인이 걸어가는 고요한 길이라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 같은 서정적 문학은 외국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프로방스 지방, 어느 목동의 이야기인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는 청명한 밤하늘에 가장 곱고 가장 빛나는 별과 같이 목동의 어깨 위에 잠든 아가씨의 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가슴 서늘한 감동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늙은 화가 버만이 병든 존스의 창 너머 벽에 있는 담쟁이덩굴에 잎새 하나를 그려 넣어 삶의 희망을 전해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또한 가난한 서민들의 삶을 의외의 결말을 통해 따뜻한 인간애와 콧등이 시큰해지는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마지막으로 99세에 <약해지지 마>란 시집을 출간한 일본의 여류작가 도요씨가 들려주는 `추억Ⅱ'의 `아이와 손을 잡고 / 당신의 귀가를 / 기다렸던 역 / 많은 사람들 속에서 / 당신을 발견하고 / 손을 흔들었죠 / 셋이서 돌아오는 골목길 / 그 역의 그 골목길은 / 지금도 / 잘 있을까'라는 시구는 간절한 삶에서 뿜어나온 속 깊은 울림으로 삶을 진실하게 살아온 인생만이 가능한 것 같아 고개가 숙여진다.
이같이 문학은 삶에 대한 인식의 깊이를 작품의 아름다운 구조 속에 용해시킴으로써 잔잔한 기쁨과 정서적 감화를 우리들 가슴에 스며들게 하고, 삶의 진실을 추구토록 하는 힘이 있다. 요즈음 계절이 바뀌어 포도(鋪道) 위 가로수에 푸르른 녹음이 바람에 흩날리고, 어깨 위로 실리는 삶의 무게를 느낄 때마다 맡은 바 책무를 성실히 수행했던 그때 그 전우들의 모습이 보고 싶다. 그러나 그들을 만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들의 삶과 결과가 진실되고 가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