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타령
행복타령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4.05.29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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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근육은 날로 줄어들고 약봉지는 늘어만 가는데도 마음이 편합니다. 아니 참 행복합니다.

물욕 색욕 명예욕에서 자유로워지니 거칠 게 없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사니 좋고, 끼니 걱정 없고, 정 나누고 사는 친지들이 있어서 호사를 누립니다.

손주들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노래하고 좋은 음악 듣고 사니 즐겁고, 가까운 숲길에서 맨발걷기를 하니 몸도 마음도 쾌청합니다.

무슨 복이 많아 그런지 싶어 지난 70여년의 삶을 회고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제 삶 전체가 행복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고 몸부림이었습니다.

공부하고, 운동하고, 연애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시를 빚고, 신앙을 갖고, 좋은 분들과 소통하고, 노후준비를 하고 산 것이 다 행복다지기였습니다. 또 틈틈이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취미동호활동을 하고, 국내외 여행을 숱하게 한 것도 다 행복을 충전함이었습니다.

아쉬움도 많고 시행착오도 적잖이 있었지만 행복을 지피는 불쏘시게였고, 행복을 다지는 디딤돌이었고, 행복을 뒷받침하는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랬습니다. 행복이 무지개처럼 먼 허공에 비추었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네 잎 클로버처럼 가까운 곳에 함초롬히 피어있었습니다.

어찌 고통과 슬픔이 없었으리요. 아버님과 어머님을 일찍 여윈 참담함과 불효막심에 자학하기도 했고, 혈연 지연 학연 없는 타향살이의 고단함과 작은 키와 협심증·허리협착증·무릎연골파열 등의 신체적 약점과 아픔을 감내해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행타 하지 않았으니 오늘의 제가 있음입니다.

살아보니 행복을 가져다주는 묘약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가 처지에 대한 자족과 감사였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긍정하고 자족하는 이와 범사에 감사하는 이는 행복했습니다.

둘째는 인연과 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었습니다. 부부 금슬이 좋고, 가족들과의 연대가 끈끈하고, 친구와 이웃들과의 관계가 원만하고, 자신이 하는 일(직업이나 소명)을 사랑하며 열정적으로 사는 이는 행복했습니다.

셋째가 행복을 유인하는 노력과 활동이었습니다. 종교에 귀의하고, 문화예술과 취미동호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여행과 여가를 즐기는 이는 행복했습니다.

그들의 양어깨에 훈장처럼 매달려있는 게 바로 기쁨과 즐거움, 만족과 보람, 영예와 자존감이었습니다.

잘났다고, 힘세다고, 돈 많다고, 많이 배웠다고, 지위가 높다고 다 행복한 게 아니었습니다.

간간히 들려오는 재벌 자녀와 인기연예인들의 자살 소식이 이를 웅변합니다.

행복도 물과 같아 움켜쥐면 쉬 빠져나갔습니다.

또 행복은 주관적이지만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라 돌아가는 사정과 생태계의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입니다.

둘 다 좋아지면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나빠지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자유 민주국가들은 국민들의 행복하게 살 권리와 행복하게 살 자유를 담보하기 위해 자국의 최상위법인 헌법에 행복추구권을 명기하여 국가와 지자체로 하여금 이를 구현케 합니다.

우리나라도 헌법 제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했지만 환경권과 생존권은 이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게 현실입니다. 행복추구권을 비웃듯 불행한 삶을 사는 불행한 사람들의 원성이 도처에서 터져 나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들의 표심을 유인하기 위해 야당이 `국민여러분 행복하십니까?'라고 외쳤고, 이번 4·10총선에서 여당참패를 부른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형국이니 당연한 귀결입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대오각성과 배전의 노력을 촉구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대한민국에 살아서 참 행복합니다'라고 노래할 수 있게.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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