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한 아파트 주민들이 혈액암에 결린 경비원을 위해 성금을 모아 전달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성금을 모은다는 게시판의 글을 본 배달원이 이 아름다운 선행을 온라인에 올리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경비원의 치료에 마음을 보탠 이 아파트 주민들을 명품주민이란 말로 칭송하였다.
유명 인사들이 소장한 명품 시계나 명품 차 같은 물건들이 소시민의 감정 따위는 무시한 채 보란 듯 방송을 타고, 명품을 장만하기 위해 범죄조차 불사하는 사람까지 생겨나고 있는 시절이다. 사람의 가치를 명품의 유무로 평가하는 저급한 인식 또한 사회전반에 퍼져있으니 명품에 대한 이미지가 좋을 수만은 없다. 힘든 병을 얻어 퇴사하는 경비원을 외면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붙여진 명품이란 단어가 그래서 더 신선하게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갑자기 비가 오면 명품 가방은 가슴에 품고 뛰고, 짝퉁 가방은 머리에 쓰고 뛴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에게도 가방이 하나 있다. 비가 오면 나대신 비를 맞고, 코 묻은 휴지부터 먹다 만 빵 쪼가리까지 마음 놓고 넣을 수 있었던 저렴한 가격의 검은 색 가방. 손잡이와 모서리가 다 닳도록 나와 함께 해준 이 가방을 볼 때마다 딸들은 인상을 썼다. 그리고는 저희들끼리 돈을 모아 제법 명품 소리를 듣는 가방을 사 주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좋은 가방이 편하지 않았다. 마음 놓고 굴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 걸 맞는 편안한 가방이 내가 모시고 살아야하는 명품 가방보다 내겐 더 가치 있었던 것이다.
불멸의 마라토너, 또는 봉달이 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선수가 있다. 애틀랜타 올림픽과 방콕 아시안게임, 부산 아시안게임,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둔 이봉주 선수이다. 그런 이봉주 선수가 근육긴장 이상증이라는 희귀질환 진단을 받고 나타났을 때 그의 굽은 등과 90도로 꺾인 목을 보며 나는 몹시 절망스러웠다. 운명 앞에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그를 통해 느꼈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꺾였던 목과 굽은 허리를 펴고 다시 일어나 뛰었다. 아직은 60%이지만 언젠간 100% 완치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애기하며 풀코스까지 완주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는 호락호락 주저앉지 않았다. 자신의 무너짐을 동정하는 타인의 시선 같은 것에 마음 쓰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것에만 전념했다. 현역 시절에도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선수였던 그는 나쁜 병과 부딪쳤을 때도 우리나라 대표 선수답게 병에 휘둘리지 않고 싸워 이기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었다. 조건이 갖추어져 있을 때 이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길 수 있는 조건이 없을 때 이기는 것은 그보다 몇 배 어려운 일이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안겨줬을 때보다 더 멋진 승리를 이루어낸 불멸의 이봉주 선수. 앞으로의 그의 행로도 나는 열렬히 응원할 것이다.
어느 드라마의 재벌 집 아들이 자신이 입은 옷을 유명 장인이 한 땀 한 땀 떠서 만든 옷이라며 거들먹거렸던 장면이 인기를 끌었었다. 그의 말처럼 명품에는 한 땀 한 땀 장인의 혼이 실린다. 그렇지만 그 또한 인간이 소비하는 하나의 물품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는 물건보다는 사람의 마음에 혼을 불어 넣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수원의 명품아파트 주민들처럼,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는 이상 절망은 없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이봉주 선수처럼, 이 사회의 상처 난 부분을 한 땀 한 땀 꿰매주는 명품사연들이 더 많이 회자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타임즈포럼
저작권자 © 충청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