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1일 토요일 오후 11시 15분 우리 시대의 양심적 선비로, 학자로, 교육자로 자신의 길을 올곧이 걸었던 정창영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났다. 평소 매우 건강하였으나 최근 췌장암 진단을 받고 29일만에 별세하시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다.
그는 매우 단순한 삶을 살았다. 1943년 황해도 장연 출생, 충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청주고등학교에서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미국 남가주대학교에서 경제발전론으로 경제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71년 8월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취임한 이후 2009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오직 학문과 제자의 양성에만 힘썼던 보기 드문 외골수 학자였다. 재임시절 연세대학교 총장, 한국경제학회 회장을 역임하는 등의 활동을 제외하고는 대학을 떠나지 않았다. 퇴임 이후 “함께 나누는 세상” 이사장을 하면서 북한 어린이 돕기 활동을 하였으며, 최근 그간 쌓아두었던 생각들을 정리하여 경제주체들 간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논지의 “민본경제”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선생님을 기억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많다. 수업시간은 1분도 어긋남이 없이 50분을 꽉 채우고 학기 초 나눠줬던 강의계획서를 모두 채웠으며 우리에게 늘 진지하게 시대를 성찰하고 소외된 이웃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경제는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문제의 드러난 결과일 뿐이며 경제를 올바로 보기 위해서는 사회의 모든 문제들을 균형 있는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후진국의 사례를 들어 강의시간을 넘겨서까지 열강하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영국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의 퇴임사로 유명한 “따뜻한 마음과 냉정한 이성을 가진 경제학자”가 되라고 늘 당부하였으며 본인도 그렇게 살았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김영환지사와 정창영교수 간에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 김지사가 어려웠던 시절 정신적으로 위로와 용기를 주었으며, 세상을 읽어내는 능력, 그리고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해결대안의 제시 등에서 김지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줬던 스승이며 지혜자였다.
충북은 민선 8기 중 정총장을 네 번째 명예도지사로 임명하여 보이지 않게 많은 혁신적 아이디어를 공급받았지만, 안타깝게도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고 만 것이다.
선생님의 업적 중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총장 재임시절 연세대학교 송도캠퍼스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2005년 T/F를 만들어 2006년 국제캠퍼스를 본격 착수할 때만해도 주위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으나, 대학의 존립과 발전은 개방과 융합, 그리고 글로벌 확장에 의해 결정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학생·동문·이해관계 당사자들을 끊임없이 설득한 끝에 결국 이뤄냈다. 지금은 대부분의 건물들이 지하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공간의 소통을 통해 생각의 융합을 이뤄내고자 했던 발상이다. 한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오늘날 학생들이 가장 다니고 싶은 캠퍼스로 만드는데 기초를 놓은 것이다.
어쩌면 충북의 상황이 당시와 유사할 것 같다. 충북은 지금 이전에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닫힌 사회에서 열린사회로의 지향, 로컬과 글로벌의 조화, 단일가치에서 다양성의 추구, 우리가 가진 자원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이를 도민들의 삶의 질로 승화시키려는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총장님의 더 많은 지혜와 권면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세상을 떠나셨으니, 우리의 할 일은 선생님의 삶의 자취와 생각들을 우리의 자산으로 삼고 이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