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 이재표 '미디어 날' 공동대표
  • 승인 2024.05.06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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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논객
이재표 '미디어 날' 공동대표
이재표 '미디어 날' 공동대표

 

혁명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폭동'이나 `피'가 떠오른다면 그건 편견이다. 국어사전에서도 혁명은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사회·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이다. 전제주의나 독재국가 시절에는 `왕통(王統)'을 바꾸는 일이었으니, 폭동과 반대급부의 무력이 피를 부르기도 했지만 말이다.

대한민국은 그런 단계를 넘어섰다. 최근의 혁명인 `2016년 촛불혁명'에서도 혁명의 주체나 그에 맞서는 세력 어느 쪽도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퇴진은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확정됐다.

우리는 4·19와 촛불 등 두 차례의 혁명으로 대통령을 하야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의 잔여임기를 놓고 `3년도 길다'는 말도 나온다. 맞다. 3년은 길다. 국민에게도 긴 시간이지만, 개혁의 길을 찾는다면 정권에게도 만회할 수 있는 긴 시간이다.

이제는 경험하지 않은 다른 혁명도 필요하다. 국회 개혁이다. 정권이든 입법권력이든 오로지 `심판'이 화두인 선거를 또 치러야 하나? 입법기관이 리트머스 시험지 취급되는 선거는 혁명적 개혁을 통해서만 바꿀 수 있다. 혁명이라고 했으니 파격적으로 제안하겠다.

한 표라도 많이 얻은 사람만 승자가 되는 `소선거구제'는 뜯어고쳐야 한다. 영·호남의 선거 결과를 보라. 대구·경북 25석은 국민의힘이 싹쓸이했다. 호남 28석은 예상대로 민주당이 모두 가져갔다. 부산·울산·경남 40석은 국민의힘이 34석을 얻었고, 민주당은 5석, 진보당이 1석을 건졌다. 이 정도면 패권 정당이 공천한 후보를 그냥 당선한 것으로 인정해도 될 정도다.

중선거구제로 선거구마다 2명을 뽑았던 1978년은 어땠을까? 전북은 공화당 6석-신민당 4석, 전남은 공화당 8석-신민당 7석이다. 경북은 공화당 9석-신민당 8석, 경남은 공화당 8석-신민당 7석이다. 이밖에 민주통일당 3명, 무소속 당선자도 22명이나 됐다.

이왕 바꾸는 김에 한 선거구에서 3~5명 정도를 뽑는 중대선거구제로 바꾸기를 권한다. 군소정당을 위한 `까치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3명을 뽑는 선거구에는 각 당이 1명만, 5명을 뽑는 선거구에는 각각 2명까지만 공천하기로 하면 한두 석을 놓고 군소정당이 경쟁할 것이다.

사안에 따라 설득해서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세력이 있다면 정치는 달라진다. 진보정당을 비롯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정당들이 다양하게 존재해야 한다. 그게 유권자들 대신하는 `대의(代議) 정치'다.

인구만 따지는 표의 등가성도 대수술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까지 갔던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기준은 총인구를 지역구 수(254개)로 나누어 `선거구당 평균 인구수'를 산출한다. 여기에다 33.3%를 가중하거나 빼면 각각 상한선과 하한선이 나오는데, 상한선을 넘거나, 하한선에 미달하면 선거구를 만들거나 없애야 한다.

인구만으로 표의 가치를 따지다 보니 서울 48석, 경기 60석, 인천 14석 등 수도권이 122석에 달해 지역구 254석의 절반(48%)에 이르고 있다. 충북의 3분의 1인 동남부 4군(보은·옥천·영동·괴산)은 2810㎢에서 단 1명을 뽑지만, 서울 송파구는 34㎢에 불과한 면적에서 3명(갑·을·병)을 뽑으니 무려 255배가 넘는 불평등이 발생한다.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도 단위로 동일한 수의 상원의원을 뽑은 양원제를 도입하거나 도시는 중대선거구제로 여러 명을 뽑고, 농촌은 소선거구제로 시·군당 무조건 한 명씩 뽑는 방법도 있다. 비례대표 수를 늘리고 권역별로 비례를 할당하는 방법 등도 고려할 수 있다.

이러면 국회가 달라질 것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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