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알짬이다. 무형(無形)의 집으로서의 가정과 가족의 모습도 그렇다. 아무리 허름한 집에 산다고 해도, 시시때때로 웃음꽃이 피어나는 집이라면 모진 세상풍파도 함께 견뎌낼 수 있으리라.
숙희(이은희 분)의 집은 지지고 볶고 난리도 아니었다. 콩가루 집안이었다.
제대로 된 전통도 없었고, 서로에게 자기 마음을 잘 표현하지도 못하는 일그러진 초상(肖像)의 집이었다. 푸닥거리를 반대할 명분조차도 없었다.
부재(不在)의 시간이 약이 되지도 못했다. 그리움이 깊어졌다면 다행일 텐데, 마음속 쓴 뿌리만 무성해져서 어설픈 재회를 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었다. 속내를 털어놓아야만 했다. 앙칼진 고성이 오갔고, 눈물도 뿌려졌다. 엄마 숙희에게 정숙(정수현 분)이 그랬고, 엄마 정숙한테 지연(김예림 분)도 그랬다.
엄마와 딸인 두 여자들(숙희와 정숙, 정숙과 지연)이 화해하는 방법에는 돈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다. `나비소녀'라는 노래 한 곡이 주는 공감도 컸고, 간절히 매달리는 포옹의 힘도 강했다.
`그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그 집'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궁금해서 고개를 주억거리며 들여다보았지만, 딱히 남의 집 이야기라고만 할 수는 없었다.
세상엔 불편한 집들이 참 많다. 바람이 들어오고 비가 새니, 알맞게 리모델링도 해야 할 것 같다. 도움이 되지 않는 껍데기를 벗겨낸 감정이 섞이는 화학적 변화도 일어나야 할 것 같다.
연극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 얼굴이 바닷바람처럼 소금기를 머금고 있었다.
제42회 충북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아 6월에 용인에서 열리는 대한민국연극제에 나갈 극단 청사의 연극 `그 집'의 관람 후기를 썼다. 연극이란 거울을 통해 자기 얼굴을 살펴보는 것도 당신의 삶을 싹 틔우는 씨앗 한 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