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학자 루이스 뱅크스 박사를 만나러 가는 길에 몇 마리 새들을 만났다. 땅을 밟고 침묵수행 중인 비둘기 두 마리와 공중에서 노래 부르며 나무를 옮겨 다니는 까치 한 마리였는데, 다행히 나를 보고 까무러치게 놀라진 않았다.
루이스를 만나러 가는 길에선 어느 후미진 골목길 아파트 입구의 버려진 쓰레기도 보았고, 오페라 `라보엠(La Bohem)'에 나온다는 꺼진 벽난로의 한기도 느꼈고, 매서운 겨울바람에 얼어버린 입을 녹이려고 `기억'이란 이름을 가진 커피집에 잠시 들러 안티구아를 마시기도 했다. 작은 커피집은 유무형의 피난민들로 북새통이었다.
루이스는 섣불리 판단해선 안 될 만큼 능력이 대단한 언어학자였다. 루이스의 데자뷔는 “과거는 미래를 안내한다”는 생각을 강화했고, 루이스의 딸 `한나(Hannah)'라는 좌우대칭어 이름은 중심을 잡고 평형을 유지하는 패턴의 필요성을 부각했다.
루이스를 만나는 동안, 불현듯 워즈워스(W. Wordsworth)의 `무지개(A Rainbow)'라는 시가 떠오르기도 했다.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내 하루하루가/자연의 숭고함에 있기를.”
루이스와 헤어지고는 자꾸 어떤 다짐 같은 것을 하고 말았다. 그래, 자연의 숭고함과 늘 연결돼야 하는 거야. 그래, 보는 힘을 지녀야만 해. 언어를 통해서 보고, 관계를 통해서 보고, 시간을 통해서 보는 힘을 지녀야만 하는 거야. 그래, 내게 선물처럼 도착한 것을 놓쳐서는 안 되는 거야.
당신의 시간과 생각과 감정을 사로잡은 영화의 감상을 나누는 것도 당신의 삶을 싹 틔우는 씨앗 한 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