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가난한 휴학생 시절, 과외를 마치고 종로에서 숙소로 가다가 배가 너무 고팠다. 주머니에는 500원 동전 하나만 남아있었다. 리어커에서 파는 번데기가 눈에 들어왔다. 500원이면 번데기 한 봉지를 사서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리어커 옆 시내버스 정류장 판매대에 있는 주택복권이 눈에 들어왔다. 번데기냐, 즉석복권 1장이냐. 결국 복권을 샀고 떨리는 맘으로 긁었다. 꽝!! 너무 배가 고팠다.
# 동물도 대박을 노린다
동물심리학 실험에 의하면 동물들의 의사결정에서도 대박 성향이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펜실베이니아대 마이클 플랫 교수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원숭이가 어떤 의사결정을 하는가에 대한 실험에서 원숭이들은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확률이 낮더라도 보다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안정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선택지보다 아무것도 얻지 못할 위험이 있다 하더라도 큰 보상, 소위 대박이 날 수 있는 쪽을 선택한다.
원숭이, 쥐, 새 등 동물들의 선택은 그들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달랐다. 기후가 따뜻하고 좋을 때는 일반적인 안정된 보상이 주어지는 쪽을 더 선호했다. 하지만 기후가 추울 때는 쪽박이거나 대박인 쪽을 더 선택했다. 날씨가 따뜻할 때는 먹이를 구하기가 어렵지 않아 모험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생존에 더 적합한 사고방식을 구축해왔다고 본다. 사람과 동물들이 안정적이지만 양이 적은 것보다는 확률은 낮지만 대박을 얻을 수 있는 쪽을 더 선호한다면 그들이 처한 자연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 대박을 노리는 사람
대박을 노리는 사람들, 한방에 인생역전을 바라는 사람들은 비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일까. 진화심리학에서 보면 경제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이 로또나 주식투자로 대박 나길 바라는 건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적 행동이다.
살아가는 데 별 어려움이 없는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이런 사람들은 로또를 사거나 주식 등에 모험을 하는 건 성실하지 못한 한탕주의자라고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직업이나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고 설사 수입이 안정적이라 하더라도 그 액수가 적은 사람의 경우는 사정이 다를 수 있다. 이런 사람들 처지에서는 평소의 수입에만 기대서는 현재의 어려움을 벗어날 가능성이 낮다. 현재 상태를 받아들이고 그냥 성실하게 지낸다면 평생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살게 되고 잘못하면 정말 굶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잠재되어 있다.
# 삶의 다양성
30년 전 복권을 사본 이후 지금까지 의도적으로 복권을 사거나 도박을 해본 적이 없다. 나의 도덕성이 높거나 내가 성실한 사람이어서일까. 아니다. 그것은 공무원이 된 후 30년 동안 하루의 오차도 없이 매달 17일이면 한 달치 살아갈 돈이 따박따박 통장에 꽂혀왔기 때문이다. 많지 않은 돈이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생존할 수 있는 돈이었다.
누군가는 오늘도 대박을 꿈꾸며 로또를 사고 주식과 암호화폐 등에 올인한다. 모험을 하는 이들을 필자와 같은 평생 안정적인 직장에서 살아온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는 대박을 노리지 않으며 성실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게 더 맞는 삶의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환경에서는 위험하지만 대박을 노리는 게 최종적으로 생존 확률을 높이는 최적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삶은 다양한 것이며 내가 살아온 길이 꼭 정답은 아닐 수 있다. 30년 전, 가난했던 그 휴학생이 긁은 복권이 당첨됐다면 그의 삶이 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