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보다는 숲이 들어간 얼굴, 눈과 입술이 하나가 된 얼굴, 잔뜩 심통이 난 얼굴, 중세의 성당 같은 얼굴, 눈썹이 악보처럼 된 얼굴, 집의 대문 같은 얼굴, 손으로 눈을 가린 얼굴, 마침내 눈동자를 제자리에 되찾은 얼굴, 시간을 묵직하게 내뱉고 있는 얼굴, 각기 다른 온도의 두 손에 끼인 얼굴, 샛노란 얼굴, 긴 머리카락이 그림자가 된 얼굴, 귀고리가 괜찮다 싶은 얼굴, 파랗게 질린 얼굴, 아직 할 말이 남아있는 얼굴,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얼굴, 빨간 머리 앤(Ann)이 생각나는 얼굴, 오렌지 빛깔 손톱들이 열매처럼 달린 얼굴, 미소까지도 숨긴 무정형(無定形)의 얼굴, 동양도 되고 서양도 되는 참 정갈한 얼굴, 마음의 창이 입술에 보이는 얼굴, 물감처럼 번진 얼굴, 머리를 짧게 자른 여전사(女戰士)로서의 얼굴,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어도 폭포처럼 시원한 얼굴, 희로애락의 편린을 담은 얼굴, 검은 눈망울로 가득한 얼굴, 지극한 평화의 기운이 감도는 얼굴, 울음이 막 터질 것 같은 얼굴, 붕대로 두껍게 감은 듯한 얼굴, 푸른 호수가 그리운 얼굴, 알 수 없는 얼굴.
그림을 그리는 우은정 작가의 전시회 `참 아름다운 신화(神話)의 시간'에서 만난 얼굴들에 대한 나의 감상이 기록으로 남아있었다.
두 해 전의 일이었다. 그의 삶에 다가온 뮤즈(Muse)의 얼굴들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마음이 외롭지 않았던 기억을 다시 더듬어보았다.
우리가 잊지 못하는 그 많던 얼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기묘한 신화 속으로 사라지고 만 것일까.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맑은 거울 속에서도 찾을 수 없는 젊은 날의 얼굴을 보고 싶을 때, 따뜻한 두 손으로 얼굴 감싸고 눈 감은 채 느끼는 고요한 평화도 당신의 삶을 싹 틔우는 씨앗 한 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