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요란 민중들 사이에서 저절로 생겨나서 전해지는 노래로서 만든 사람을 알 수 없고 구전으로 전해지면서 민중들의 삶과 정서, 역사가 있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리고 노래로 불릴 때도 특별한 수련 과정이나 연습 없이도 자연스럽게 즉흥적으로 부를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민요의 이런 특징 때문에 민요를 민중의 소리요,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함축하고 있는 예술이라고 평가된다.
어떤 민요는 지배층의 수탈에 맞서는 내용으로, 때로는 외적의 침입에 항거하는 의지를 비장하게 또는 풍자적인 수법으로 표출한 민요도 적지 않다.
`쾌지나 칭칭 나네'는 경상도 지방의 민요로 임진왜란과 관련 있다. 이 말은 `쾌재라! 가등청정이 쫓겨나가네'가 줄어든 말이라고 전해진다. `쾌재라(快哉-)'는 `신난다', `좋~구나', `시원하다'는 뜻을 가진 감탄사이다. `칭칭'은 `가등청정(가토 기요마사)'을 지칭하고, `나네'는 `나간다', `쫓겨간다'는 뜻이다. 가토 기요마사(1562~1611년)가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했다가 의병과 군대에 쫓겨 달아나는 모양을 그렇게 노래로 만들고,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 부르기 편하게 글자를 줄여서 불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민요의 탄생에는 여러 설이 존재하는데, 그중 대표적인 설이 안동 하회 마을에서 시작된다. 하회 마을은 `징비록'의 주인공인 서애 유성룡 선생의 고향 마을이다. 선생의 형인 겸암 선생은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감하고, 동생인 유성룡에게 조언을 하고,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기도 했던 인물이다.
하루는 겸암 선생이 유성룡에게 찾아와서 사흘 후에 일본에서 자객이 올 것인데, 이를 막기 위해 동네 아이들을 불러서 `가등청정이 나오네'라는 노래를 부르며 놀도록 시켰다는 것이다. 며칠 후 정말 가등청정이 보낸 자객이 하회마을에 들어서려는데, 아이들이 `가등청정 나오네'라고 노래를 부르며 동네에서 놀고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자객이 아이들에게 누가 가르쳐준 노래냐고 물으니 아이들이 서애 대감이 가르쳐 주었다고 말했다. 자객이 서애 대감의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 있는 것에 놀라워하며 살해할 생각을 버리고 도망을 갔다는 일화이다.
가토는 임진왜란의 침략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는 6촌 간이다. 3세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아래서 성장하며, 어렸을 때부터 히데요시의 시동을 지내며 많은 전투에 참가해 전공을 세웠다.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켰을 때 한반도의 동쪽을 따라 울산 방면으로 진군하여 경주를 거쳐 함경도까지 침략하였고, 조선의 왕자들까지 포로로 잡은 악명이 높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의병장 정문부 등이 이끄는 우리 의병들이 일본군에게 빼앗겼던 여러 읍과 진을 수복했다. 계속해서 길주 장평·쌍포에서 일본군을 물리쳤고 결국 가토의 일본군을 대파해 관북지역을 수복하고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게 되었는데 이때 모든 의병과 민중들이 한마음으로 불렀던 노래가 바로 `쾌지나 칭칭나네'라는 것이다. 가토를 비롯한 왜놈들을 물리치고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장낸 민중들의 한서린 노래가 `쾌지나칭칭나네'로 여전히 우리 민족의 가슴에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의병의 고장 제천에도 `제천강강술래', `제천지신밟기' 등의 민요와 전통 놀이가 있다.
잊혀지기 전에 우리 조상들의 전통과 역사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제천의 초등학교에서 배우도록 할 예정이다.
그래서 `쾌지나칭칭나네'와 같은 가슴 벅찬 민족의 노래와 전통놀이를 통해 역사적 정체성을 계승할 수 있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