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의 법치?
우리 사회에서의 법치?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3.02.2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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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명예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법치(法治)? 법으로 다스린다고 할 때 이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듯하다. 공정하고 상식적일 것 같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특히 법에 오래 종사한 사람들이 세상사를 재단하는 걸 법치라고 한다면 이에 흔쾌할 사람이 많을까?

법은 종종 비상식적이다. 어느 누구도 피해를 봐서는 안 되기 때문에 항상 피고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판결해야 한다. 그래서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쯤 아내와 정부를 살해한 미국의 미식축구 선수였던 O. J. 심슨은 형사적으로 무죄판결을 받는다. 유죄라는 판단에 아주 적기는 하지만 합리적 의심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6년 근무한 후 받은 퇴직금이 50억이라는 사실은 비상식적이다. 그게 뇌물이 아니고서는 해석이 되지 않는데 법적으로는 무죄라고 한다. 그게 어떻게 말이 되냐고? 상식적으로 보면 말이 안 되지만 법적으로는 말이 됐다.

법적으로 살면 세상사가 복잡해진다. 죄형 법정주의는 범죄의 구성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한 법률에 저촉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다시 말해 법에서 처벌하라고 정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네 이웃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할 때 우리는 상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해석해서 공갈, 사기, 협박 등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런데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이지 사기나 공갈, 협박을 하지 말라고 한 건 아니기 때문에 사기나 협박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거짓말하지 말라고 한 법조문만 있으면 사기나 공갈, 협박은 처벌할 수 없다. 당연히 개별 항목마다 그에 관한 법조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면 갈수록 법은 복잡해진다. 당연히 세상도 복잡해진다.

그 복잡한 법조문을 일반 사람들이 알 수 있을까? 없다. 그래서 법 전문가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법이 전문화되면 권력이 된다. 불고불리의 원칙이라는 게 있다. 기소하지 않으면 유무죄를 다툴 수 없다는 것이다. 검사가 특정 사건의 범죄구성요건을 따져 재판에 붙이자고 결정을 해야만 판사가 비로소 유무죄를 가릴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죄를 물을 수 없다. 아무리 주가 조작의 혐의가 짙더라도 검사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으면 죄를 물을 수 없다. 법적인 단죄를 해야 하고, 하고 싶은데 검사가 묻어두면 처벌받지 않는다. 엄청난 권력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법치라는 말이 위험한 건 그 배후에 막강한 권력이 깔려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소하더라도 판사가 명확하게 유죄판결을 내릴 수 있게끔 수사해서 증거를 대지 않으면 판사는 유죄판결을 할 수 없다. 부실한 수사에 대해 검사가 무능하다고 질타할 수는 있지만 50억 퇴직금이 뇌물이 아니라는 판결을 뒤집을 수는 없다. 일개 검사가 독박 쓸 각오를 한다면 범죄자임에도 범죄자로 처벌할 수 없게 된다.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고 해도 뒤집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법대로 산다는 게 인간적으로 산다는 건 아니다. 법을 최소한의 윤리라고 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이 법이라는 말이다. 인간적인 도리를 하고 살면 법에 저촉되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를 뒤집으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게 인간적 도리를 다하고 사는 건 아니라는 말도 된다. 법의 잣대로 세상을 본다는 것과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구현하는 건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유방은 진나라 수도 함양에 입성한 후 진의 엄혹한 형벌과 법령을 모두 폐지시키고 살인죄, 상해죄, 절도죄(殺人者死、傷人及盜抵罪)만 남겨 백성의 마음을 얻어 천하를 통일한다.

법대로 사는 사람보다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낫다.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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