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육이 심상치 않다. 이명박 정권 시절의 교육황태자가 장관으로 화려하게 부활했고, 박근혜 시절 전국의 학계를 들었다 놓은 역사 교과서 파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했으며, 대학의 자율화를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교육부에서 파견해왔던 국공립대학 사무국장 모두를 대기발령 조치했다.
국공립대 사무국장들을 일괄적으로 대기발령한 사안은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국공립대 교수회 협의체에서도 환영의 뜻을 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교육부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사실 국공립대 직원들의 보스는 총장이 아니라 사무국장이라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모두가 쉬쉬하지만 모두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말이다. 그 만큼 교육부 파견 사무국장의 위세는 대단했다.
이 문제는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전격적으로 무모한 방식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27명의 고위관료들을 특정한 문제점 적시 없이 일괄적으로 대기발령할 수 있을까? 이건 행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사람들이 무슨 잘못을 했을까? 무능하다고? 법을 뒤져보면 이 사안 말고는 일괄적 대기발령 명령을 내리는 건 법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국가공무원법 73조 3) 모두가 무능하다는 건 법적으로 입증 불가하다. 결국, 이 조치는 불법 조치가 된다.
더구나 교육부 관료들은 국립대 사무국장에 응모조차 할 수 없게 했다. 교육부 파견 사무국장제도가 부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면도 없는 건 아니다. 교육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 와서 저 구중궁궐 같은 교육부에 다리를 놔서 대학의 행정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교육부의 압력에 대해 방패막이를 해주면서 관할청과 산하기관 사이의 행정 매개와 소통의 통로가 돼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걸 지금처럼 일거에 싹 없애고 교육부와 대학의 관계를 원점에서 지금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닥쳐올 혼란이 눈에 선하다.
대학에서 근무했던 사람으로서 교육부 파견 사무국장 제도 폐지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설익은 방식으로는 아니다. 근 100여년 가까이 존치됐던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교육부와 대학에 대한 감시와 통제 시스템을 지원시스템으로 전환한 이후 교육부 파견 사무국장 제도를 부수적으로 폐지해야 부작용도 없고 대학의 자율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교육부가 대학의 인사와 재정을 관장하는 체제는 그대로 두고 교육부에서 사무국장만 파견하지 않는다면 대학의 피해가 훨씬 더 커진다. 거기서 오는 피해는 고스란히 대학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과거 장관을 했던 장관이 오기 때문에 이 난국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그건 모르는 소리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그가 장관이었던 시절 총장 직선제를 폐지했고 특성화사업을 해서 대학의 정원을 줄여 그 여파로 현재 그 재정적 피해를 고스란히 대학이 떠안고 있다. 그 당시 이 정책에 발맞췄던 대학들일수록 더 개고생을 한다. 대학의 자율성은 안중에 없이 상명하달 식으로 대학의 총장직선제를 폐지한 사람이 대학의 자율성을 확보해준다고? 믿을 수 없다.
정권이 바뀌면 정치장관이 들어서 교육정책을 바꾸니 국가백년지대계로서의 교육이 바로 설 수 없어 정치와 세태로부터 독립적인 기구를 만들어 탈정치, 탈 이념적 교육체제를 구축하자고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과거 박근혜 정권 시절 역사교과서 파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던 인물을 위원장으로 앉혔다. 누가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국가 교육의 앞날이 답답하다. 국가 교육은 너무 거창한 이야기라고? 대학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대학의 앞날이 암울해 보인다고하면 어떨까?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