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의 끝 날입니다. 오늘이 지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2020년이 아쉽기는커녕 되레 반갑기까지 하니 참으로 고약한 해였나 봅니다. 유한한 인생이라 가는 세월 붙들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등 떠밀며 어서 가라 채근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코로나19 때문입니다. 한낱 바이러스에 지나지 않은 코로나에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이 일상의 자유마저 영치당한 채 일 년 내내 마스크로 얼굴 가리고 살아야 했으니 지긋지긋하기도 하거니와 부끄럽기도 해서입니다.
그랬습니다. 코로나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습니다. 그 날벼락이 지구촌 곳곳에서 남녀노소와 귀천강약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내리쳐대니 납작 엎드려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석하게도 지구촌 인구의 1%나 되는 8천만 명이 코로나에 감염되어 모진 고통과 수난을 받았고, 그 중 2백여만 명은 졸지에 불귀의 객이 되는 참화를 입었습니다.
이로 인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종교 등 인간사회의 제반활동이 위축되고 감퇴하였고, 인류사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비대면 사회의 비대면 삶을 살아야 했으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습니다. 아니 대재앙입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EU 국가들이 자국 국민들에게 백신을 접종하고 있는데 방역 모범국가라 뽐내던 대한민국정부는 그들보다 두 달이나 늦은 내년 2월쯤에나 대국민 접종을 할 수 있다니 부아가 치밉니다. 전파력이 강력한 남아공발, 영국발 변종바이러스까지 나돌고 있어 일각이 여삼추이거늘.
둘째는 어지러운 나라 사정 때문입니다.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아시타비(我是他非)와 언론계가 뽑은 10대 뉴스들이 이를 웅변합니다. `나는 옳고, 다른 이는 틀리다'라는 뜻의 아시타비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과 대응되는 신조어로 정치인들과 국정논의가 그렇게 몰염치에 물들어 있다는 풍자이니 나라 꼴이 좋을 리 없습니다.
10대 뉴스 역시 BTS와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발 한류뉴스 외엔 어둠 일색입니다. 코로나사태를 비롯해 오랜 장마로 인한 호우피해, 조국사태와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장관의 갈등, 오거돈 부산시장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문, N번방의 성착취 동영상, 청년실업의 폭발적 증가 등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단말 보다 쓴말을 더 많이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듯 2020년은 빨리 벗어나고 싶은 어둠의 긴 터널이었습니다.
셋째는 제 삶의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코로나 방역에 협조한다는 미명아래 할 도리를 소홀히 한 게 너무 많아서입니다. 양가 부모 중 유일하게 생존해 계시는 장모님이 요양원에 계시는데 찾아뵙지 않는 걸 잘한 것 마냥 자위한 불효막심한 놈이었습니다.
가봐야 할 결혼식과 장례식엔 봉투만 보냈고, 손주가 보고 싶어도 선뜻 나서지 못했으며, 어려운 친지들을 보고도 못 본 척 애써 외면했고, 감사해야 할 분들에 대한 보은도 주저했으며, 미사 참여와 회개도 부실하게 하는 등 이래저래 미편하고 죄스럽기만 한 해였습니다.
마스크로 얼굴만 가리고 산 게 아니라 양심까지 가리고 산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는 한 해였습니다.
각설하고 이 난리에 무탈하게 새해를 맞는 이들은 진정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만큼 코로나에 희생된 분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와 공동체에 알파가 되는 감사의 삶을 살아야겠지요. 사지에도 굴하지 않고 방역과 치료에 열과 성을 바친 의료진들과 봉사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경의와 감사를 표합니다. `멈춤과 혼란과 반목'으로 점철된 2020년과 함께 `단말쓴말'도 막을 내립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시인·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