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흩뿌린 비가 바닥 색을 바꾸어 놓았다. 아스팔트 검은색이 주황색조로, 낙엽 사이로 보이는 그나마 있던 빛바랜 검은색은 코팅이 되었다.
주황색조의 낙엽은 예전 같으면 차가 지나는 방향으로 단체로 몰려다니고, 뒤처진 녀석은 그 자리에서 움찔 정도 시늉만 하고 자리를 지켰다. 사람이 다가오면 감지기가 작동해 사박사박 소리를 내고, 조금이라도 오래된 녀석들은 바스락거리며 이리저리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미련을 두고 자리를 지켰다.
그랬던 녀석들이 비가 그친 뒤에도 도무지 움직일 생각 없이 바닥의 색을 오래도록 장악하고 있다. 억센 대나무비질에도 움직일 생각이 없다. 납작 엎드려 아스팔트 바닥과 하나가 되었다.
바닥의 색이 바뀐 윗부분의 색은 점점이 주홍이다. 오랜 장마에 익지도 않은 녀석들이 어찌나 많이 떨어졌던지, 남아있는 주홍색 점은 어른 주먹 이상으로 크다. 비가 잎을 바닥으로 떨구어 감추어져 있던 점이 확연히 돋보인다. 그러고도 모자라 비에 색의 깊이가 더해졌다.
그 깊은 색이 투명한 색을 더해가는 곳에는 커다란 새, 작은 새 온갖 동네 새들이 모여든다. 잔뜩 모여든 작은 새의 지저귀는 소리는 예쁘다. 몰려다니는 파드닥파드닥 날갯짓 소리도 앙증맞은 경쟁이다. 중간 새의 소리는 동료를 불러 모으는 소리다. 연신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어서 와!'하며 요란스럽다.
불러들인 새가 다른 새인지 불러들이고는 이내 텃세다. 직바구리니 당연 텃새, 텃세를 부린다. 바로 옆 학교의 커다란 나무에서 날아드는 동료 새의 비행솜씨를 감상할 사이도 없이 자리를 옆으로 비킨다. 연약한 나뭇가지에 둘 만의 시간이 잠시 이어진다.
그리고 또 다른 고약한 텃새, 괴성과 같이 목청을 높여 잠시의 시간도 용납 못 하는 녀석의 등장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점하겠다는 욕심에 모두들 자리를 뜬다. 그러는 사이 잘 익은 홍시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져 터져버렸다. 주황색 물든 바닥에 주홍색 감이 처참하게 널브러진다.
비가 그쳤다. 대나무 비를 들고 낙엽을 쓸고 커다란 장대로 감을 딴다. 낙엽이 진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에 매달린 주홍색의 점점을 내린다. 작년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숫자다. 그나마 밖으로 달려있던 감은 지나는 사람들이 먼저 손을 대었고, 높다랗게 달려 손을 댈 수 없는 곳의 감은 지나는 탑차에 치여 산산이 부서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렇게 반쪽을 잃고 집안 쪽의 감만이 온전히 달려 있다. 하나 둘 장대의 갈라진 사이에 감을 들이며, 고민의 깊이가 더해진다.
새를 불러들이고 나뭇가지를 껑충껑충 옮겨 다니며, 알콩달콩 쪼고, 텃세를 부려가며 독차지하던 녀석들, 그 녀석을 어떻게든 잡아보고자 나무에 오르던 길량이 새끼들. 새 사냥에 실패하고 굴욕을 만회하고자 아빠고양이까지 나무에 오른다.
가장 낮은 자세로 나뭇등에 포복을 한다. 그런 위험 속에서 달달하게 익은 투명한 감을 쪼는 행복을 누릴 새를 생각하니, 하나라도 더 남겨놓아야 하지 않을까? 매일같이 날아들어 소리를 들려주고 분주하게 옮겨 다니며 뜰의 생기를 넣어주고, 가끔 똥이라도 싸놓고 가면서 이런저런 풀과 나무가 자라게 해주고, 거름 정도가 될 수 없는 똥이지만 흔적을 남겨주고 간 공을 생각하니 하나라도 더 남겨야 한다. 그러고 땅에 내려진 감을 생각하니 너무 적다. 올해 감 농사 망했다.
결국 잘 익은 홍시 위주로 남겨 놓기로 한다. 벌써 여기저기 쪼아 놓은 감을 더해 맛날 것 같은 감을 남겨 놓는다. 까치밥이라 부르는 홍시가 맛깔스럽게 매달려 있다. 내가 먹을 감은 장대로 딴, 아직 덜 익은 감이다. 시간이 지나며 후숙되어 연시가 될 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