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녹색 북새통
녹색녹색 북새통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 승인 2020.07.1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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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문화산업1팀장

 

“블루베리 옆에 있는 호박 따줘, 더 익으면 맛없어.” 텃밭을 바라보고 난, 조그마한 주방 창문에서 나는 소리다. 소리의 방향으로 알았다고 눈길을 주었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이 보이지 않으니 확인할 수 없다.

고개를 돌려 호박잎을 헤집는다. 호박잎이 넓어 어디에 숨었는지 숨바꼭질이다. 어릴 때 따야 한다고 열심히 헤집고 찾았지만, 놓친 녀석들의 몸집은 팔뚝에서 다리통으로 변해있다.

따야 할 어린 호박은 보이지 않고 엉뚱한 호박순이 눈을 끈다. 기본 줄기에서 곁가지가 주 가지를 앞설 기세다. 어떤 녀석은 블루베리 가지에 매달려 가지를 땅으로 끌어내리고, 어떤 녀석은 잘 크던 방울토마토를 압사시킬 기세다. 안 되겠다 싶어 곁순을 서둘러 잘라낸다. 많기도 하다. 금세 수북이 쌓인다.

이 녀석들은 아침 밥상에 오른다. 노릇노릇 잘 지져 간장 양념에 무친 호박지짐 옆에 그 기세등등하던 녀석들이 풀이 죽어 있다. 잘 쪄낸 호박순의 맛을 알기에 쌈장을 얹어 밥 한술 떠 입으로 들인다. 건강한 맛이다. 입에서 머리와 가슴에 녹색의 맛이 퍼진다. 호박순이 들어간 된장국을 한술 떠서 구수하게 마무리한다.

7월의 아침, 저녁의 밥상은 녹음이 짙어진다. 봄부터 시작된 녹색의 연찬은 쉬 끊이질 않는다. 가끔 가지무침이 올라오지만, 속살이 보이고, 감자가 있으나 녹색에 가려 표가 안 난다.

어느 시인의 산문집에서 문장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하숙집 아주머니의 시래기도 아니고, 하루를 거르지 않고 녹색이다. 아침이슬을 머금은 아욱순을 넣은 된장국, 비를 흠뻑 올린 깻잎 순을 볶은 깻잎볶음, 갓 따온 오이무침을 기본으로, 한 접시 모두 내 차지가 되는 뽕잎순무침, 가지찜무침, 비름나물이 주변으로 포진된다. 심지어 흰 쌀밥의 포슬포슬함만이 있어야 하거늘, 그 작은 원 안에도 완두콩이 투하되었다.

아침 시작이 작은 뜰에서 텃밭으로 옮겨져 분주해지는 계절이다. 한줄기 비가 내리고 난 뒤, 뒤처리다. 방아깨비 새끼들이 널브러진 먹거리를 찾아 이리저리 튀고, 알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사마귀는 공격할 자세를 취하고 있다. 내린 빗방울 수에 맞춰, 풀이 텃밭을 점령하면서 벌어진 상황을 수습한다.

먼저 낮은 포복으로 점령한 바랭이를 걷어낸다. 뽑다가 끊어져도 마디에서 뿌리를 내리는 쇠비름, 누구보다 굳세게 자리를 잡고 하늘로 뻗는 까마중, 바닥을 덮는 비단풀을 눈에 띄는 대로 제거한다.

쇠비름도 약초라 해서 효소로 담았는데 맛이 별로여서 보이는 즉시 제거한다. 그렇게 정리를 했는데, 이젠 고민의 깊이가 더해지는 시간이다. 겨우내 파를 심었던 자리에 고추를 심었는데, 여기저기서 파씨가 떨어져 파가 자란다. 아욱이 꽃을 피워 씨를 달더니 여기저기서 자란다.

가장 골치 아픈 건 쓰임이 가장 많은 들깨다. 깻잎 순을 볶아먹고, 간장에 저며 밥에 싸먹고, 김밥재료에서 빠지지 않는, 무엇보다 삼겹살 먹을 때 꼭 있어야 하는 깻잎의 주체가 고추밭에도 딸기밭에도 심지어는 쑥갓 사이에도 자란다. 문제는 다른 것을 덮어 버린다는 것이다. 시금치를 심었던 곳에 웬 더덕순이 나오고 있다. 이 무슨 북새통인지 정리가 안 된다.

텃밭은 북새통이다. 잠시 방치를 했다간 말 그대로 난리통이 된다. 퇴비를 펴고 뒤집어 고른 흙은 금세 새들의 목욕터가 되고, 고양이들의 배변 처리장이 된다. 모종이 자리할 사이 풀이 자라고, 그전에 재배하던 작물의 씨앗이 떨어져 싹을 올린다.

그래서 옮길 것은 모종을 떠서 한 곳으로 이식해 재배한다. 몇 종류만 키우라는 주변의 잔소리를 듣지만, 난 이 북새통이 좋다. 서로 어울려 많은 것이 자라니 서로 작용에 의해 더 잘 자란다. 서로 경쟁하듯 다양한 것들이 섞여, 손이 많이 갈 듯하지만 사실은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다. 어쩌면 우리가 잡초라고 제거해야 할 것들도 이 북새통에 함께 해야 할 약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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