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발발 7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왠지 심사가 몹시 언짢고 무겁습니다. 세월의 무게만큼 남북관계가 진전되기는커녕 20년 이전의 냉전체제로 퇴행하는 것 같아서입니다.
북한정권이 평화의 상징처럼 기능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무자비하게 폭파한 후 연일 대남비방과 무력도발의 수위를 높이고 있어서입니다.
겉으론 탈북단체들의 삐라살포를 문제 삼았지만 속내는 저들 의도대로 남한정부가 움직여주지 않은데 대한 시위이고 북한주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한 술책으로 보입니다. 어찌되었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싹튼 평화의 무드가 물거품이 되는, 속된 말로 우리 정부가 뭐 주고 뺨 맞은 꼴이어서 분통이 터집니다.
70년 전 오늘은 일요일이었습니다. 광복된 지 5년도 채 안 되는 신생국가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선전포고도 없이 쳐들어와 남한(대한민국)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공휴일이라 병영은 비어 있었고 무기 또한 열세라 국군이 북한군을 당해낼 수 없어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당하는 비운을 맞습니다.
피난민을 뒤로 한 채 부산으로 정부를 옮긴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16개 나라에서 모인 국제연합군을 투입해 벼랑 끝에 선 대한민국을 구했고, 유엔군 최고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의 `인천 상륙 작전' 성공으로 전세를 역전시켜 압록강까지 북진을 합니다.
남조선해방은커녕 정권사수조차 힘들게 된 김일성은 중공군을 끌어들여 물고 물리는 악전고투를 벌이다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로 3년 1개월의 치열했던 전투는 막을 내립니다.
하지만 휴전선이 상징하듯 `종전'이 아닌 `정전' 상태의 지속이었기에 남과 북이 체재경쟁을 하며 대립과 반목을 키웠고, 걸핏하면 불바다 피바다 운운하며 겁박하는 3대 세습의 북한정권으로 인해 살얼음 걷듯 살아야 했습니다.
안타까운 건 동족상잔의 참화를 보고 겪은 전쟁체험세대들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씩 세상을 등져갔고 어느새 전체인구의 15%를 밑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 대다수는 자유민주 수호를 위해 몸바쳐 싸운 역전의 용사들이었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마중물이자 디딤돌 역할을 한 고마운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민족의 오랜 아픔이던 보릿고개를 날려버린 세대이고, 새마을운동의 주역으로 잘살기 기풍을 진작시켰으며, 이역만리 열사의 땅에서 건설노동자로 베트남전쟁의 참전용사로 외화벌이를 해 경제부흥의 밀알이 되었고, 자식들을 죽기 살기로 교육시켜 산업화와 민주화의 견인차가 되게 한 의지의 한국인들이었습니다.
이제 국가를 이끄는 국가원수나 정치인들이 모두 전후 세대들입니다. 북한에서 최고 존엄으로 우러러 받드는 김정은은 혈기왕성한 30대입니다. 전쟁의 참화를 간과하거나 모르는 세대들이라 저어됩니다.
아무튼 국가의 안보와 국민의 안위는 국력 여하에 달려있습니다. 우리 역사의 숱한 외침이 그렇고 6·25전쟁이 또한 그렇습니다. 특히 국방력이 만만해 보일 때 침략을 당했고 민초들은 모진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러므로 국력을 배가해야 합니다. 북한은 물론 잠재적 적인 일본과 중국에 대적할 수 있으리만큼 육·해·공군력을 키워야 합니다. 미군이 돕지 않아도 될 만큼. 그래야 종전협정도 맺을 수 있고 제2의 6·25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힘의 우위에 있지 않은 평화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전란의 최고 적은 내부균열이고 적전분열입니다. 안보와 국방에는 여와 야가 따로 일수 없고 좌와 우, 보수와 진보 역시 따로 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뭉쳐서 한목소리를 내고 지혜와 에너지를 집중해 국력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이 땅에 더는 6·25 망령이 자리할 수 없도록.
/시인·편집위원